저자 : 김영준
출판사 : (주)스마트북스
초판 1쇄 발행 : 2017년 10월 15일 

1. 헬조선의 이해 
요즘은 한풀 꺾인 듯하나, 지난 몇 년 동안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가장 크게는 정치권에 대한 날선 비판이 담긴 표현이겠으나, 정치적인 이슈 외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흔히 접하는 식품이나 식재료, 주변 시장을 보며 외국에 비해 억울하리만치 잘못된 문제들을 가리켜 '헬조선화 당했다'라는 표현으로 퉁치곤 했다. 

'우리나라는 일인당 GDP도 낮으면서 왜 다른 선진국보다도 식료품비가 비쌀까?', '왜 한국은 스타벅스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비쌀까?', '젠트리피케이션은 왜 발생하는 것이고, 대형 프랜차이즈는 나쁘기만 한 걸까?', '왜 한국은 자영업의 지옥일까?' 

<골목의 전쟁>에선 이런 여러 현상들을 원인부터 결과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평소 갖고 있던 오해들을 풀어준다. 

난 사실 책의 내용 자체도 흥미롭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사고패턴이 무척 매력적이다. 단순히 피상적인 현상의 결과값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이 왜 발생했을지 그리고 그 현상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으며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까지 생각해본다. 뉴스를 하나 보더라도 단순히 그 뉴스 하나의 결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뉴스가 다른 전체적인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나도 비록 이곳 블로그에는 거의 기록하지 않지만, 하루의 대략 절반 이상을 한국이나 세계의 경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읽고 관찰하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 때문에 매일 새로운 기업을 관찰하고, 기존의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공부한다. <골목의 전쟁>을 읽으면서 계속 이런 저자의 생각 패턴, 사고 방식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나저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계속 드는 생각이... 부동산 시장이란 것도 결국엔 주식 시장과 닮은 면이 꽤 많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야 훨씬 더 많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비슷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2. '골목의 전쟁' 3줄 평 
- 지난 몇 년간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넘겼던, 한국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오해들 몇 가지를 풀어주는 책. 
- 우리 주변의 상권들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통찰력있게 관찰한 글이 일품. 
- 책을 읽다 보니 주식도 그렇고, 부동산도 그렇고, 사람 사는 세상이 참 다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시, 에세이2017. 11. 15. 23:49
뜰힘
새를 날게 하는 건 
날개의 몸일까 새라는 이름일까

구름을 띄우는 게 
구름이라는 이름의 부력이라면 

나는 입술이 닳도록 
네 이름을 하늘에 풀어놓겠지
여기서 가장 먼 별의 이름을 
잠든 너의 귓속에 속삭이겠지

나는 너의 비행기
네 꿈속의 양떼구름

입술이 닳기 전에 입맞춤해줄래?

너의 입술일까 너라는 이름일까
잠자리채를 메고 밤하늘을 열기구처럼 솟아오르는
나에 대해 
-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시집 中 - 

가끔 그런 질문을 주고 받곤 했다. "날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같은 질문을 받으면 딱히 내가 그것에 답할 수 있는 요량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좋아하는 건 존재 그 자체이다. 따라서 존재가 갖고 있는 어떤 분리된 속성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왠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내가 만일 그녀의 손을 좋아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의 손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그 중에 마음이 드는 손을 고르라고 한다면 난 과연 그녀의 손을 고를 수 있을까. (어쩐지 가정이 끔찍하게 들린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건 그녀라는 존재를 가정한 상태에서의 그녀의 손이다. 따라서 그녀의 좋아하는 부분을 말하라고 하는 그 순간에도, 난 언제나 전체적인 측면에서의 그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름은 뭔가 묘하다. 이름은 어딘지 주문과도 같은 속성이 있다. 옛 설화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고 알고 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건 일종의 마법 주문이었다는 것이다. 사물에 명확한 이름을 붙임을 통해 사물은 자유로운 존재에서 지상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속박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무척 추상적인 말이고, 어딘지 이상한 말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꽤 내 마음에 든다. 실제로 나라는 존재가 실존적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게 이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군 시절 잠깐 내가 번호로 불렸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어딘지 내 스스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라는 물질은 남아 있지만 정신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할 때, 이름은 항상 묘한 느낌을 준다. 

전화를 할 때마다 난 그 사람의 이름, 혹은 그 사람의 별명을 부른다. 그 묘한 울림이 내게 감동을 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는 내 안에서 살 수 있고, 나도 그 안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1. 14. 23:49
우연인듯 우연아닌 것
어떤 현상을 잘 모르고 있을 땐 그것이 단지 우연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책을 읽거나 혹은 그 현상에 대해 깊게 관찰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사실은 우연이라기보단 어떤 정교한 원인이 만나 이뤄진 필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필연이라는 말은 우습긴 하다. 그 사이에 수많은 인과관계가 있을 테고, 다른 여러 변수들이 있을 텐데 필연적인 관계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정확한 사고 체계인지는 우려가 섞인다. 그럼에도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그것이 명확한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나는 나의 삶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런 필연적인 관계 속에 속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나의 의지라는 것이 있을 테고, 내 주변의 의지라는 것이 있을 테고, 또한 매일 우리가 겪는 환경의 변화와 바이오리듬의 진폭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그런 수많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정한 방향에 따라 삶이 진행되고 있는 형태를 바라보면 경이롭다기보단 소름끼치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사실 나 자신조차도 나라는 개체 이외에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고정된 형질을 갖고 있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중학교 혹은 고교 동창들 중에 내가 기억하던 그들의 성격과 성적과는 지나치게 다른 정도로 성공하거나 큰 돈을 벌어들인 경우 난 그들의 어떤 의지나 노력을 보고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보단 '대체 저 녀석이 어떤 행운을 만난 걸까.' 혹은 '어떤 변수가 있었길래 그들이 큰 돈을 벌 수 있던 걸까'라는 부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사실 인간 개체만 두고 보면 그나마 변동성의 자유를 가진 존재인지라, 사람이 빠른 속도로 자신의 위치만 변경한다면 삶의 모습을 바꾸는 것 쯤이야 크게 어려울 것 없다. 다만 그런 존재가 한 명이 아닌 두 명 혹은 세 명, 더 나아가 10명 이상의 집단이 되는 경우 그 모습은 어떤 고정성을 띠기 마련이다. 

그렇게 고정성을 띤 존재들은 의지 자체에 의해 변경되기보단 그들이 본래 갖고 있던 특질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진실로 우연이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어떤 논리적 설명을 통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런 저런 설명을 통해 필연임이 증명된다. 사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혹은 나 외의 다른 많은 사람이 있을 때 이런 점이 명확해진다는 점은 단체 활동에서 무엇보다 소름끼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잡문 > 기타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시하) 시간  (0) 2017.11.20
TV보는 시간  (0) 2017.11.17
멍 때리기  (0) 2017.11.13
다이어트 중독  (0) 2017.11.10
친구 유통기한  (0) 2017.11.08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