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11. 9. 23:05

저자 : 황석영
출판사 : (주)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 2014년 1월 15일 
전자책 발행 : 2014년 11월 10일 

1. 흔들흔들 
이 책에서 준이와 그의 친구들이 전국을 유람하며 지냈던 것처럼 무전여행을 해본 경험은 없었다. 고교시절을 지나 대학생이 되어 내게 억만금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여행 가본 곳이라곤 가평, 청평, 월미도, 속초, 부산 정도가 전부였다. 친구들과 마음이 맞아 큰 목적 없이 결정한 것이라기보단 MT라든가 혹은 주말 여행 겸으로 가볍게 가보는 여행이 다였다. 

<개밥바라기별>을 읽으면서 난 내 생애에서 친구가 있었는지를 되물었다. 친구 한 놈과 월미도를 갔었고, 또 지리산을 갔던 적이 있다. 이번 겨울엔 저 아래쪽 여주라던가 혹은 겨울바다를 보러 가는 거 어떻겠냐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 녀석은 겨울이 접어들기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함께 건넛동네로 유람을 가거나 혹은 가출을 같이 했던 친구가 여럿 있었지만, 그마저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해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겠거니 걱정이 되어 다 뿔뿔히 흩어졌다. 대학을 마치고 그네들을 만나서 술자리 하면서 하는 소리가, '넌 그래도 번듯이 공부했으니 괜찮겠다'라는 말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개밥바라기별>을 읽으며 다시 떠올렸다. 나도 내 삶에 철학이 없었단 걸 알고 있다. 철학도 없고 우정도 없었다. 뒤늦게 그런 걸 반성하고 친구들에게 잘해야겠다, 나도 뭔가 방향성 있게 살고 싶다고 생각해서 더 깊게 사람을 사귀려고 하는데, 뭐랄까 어려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는 달리 반항심도 없고 거친 구석도 없다. 다들 멀뚱멀뚱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구색이 완연하다. 술 마시며 조금 다가간다 싶으면 술이 깨곤 한다. 

남들 듣기엔 바보같을 진 몰라도 어릴 적엔 '양아치'라는 말을 동경했다. 어디 하나 모나지 않고, 사회가 정해놓은 철길을 빠르진 않아도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걸어왔던 탓에, 그딴 길은 무시하고 자기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양아치들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어른들은 그들을 두고 거칠다, 버릇없다, 미래를 볼 줄 모른다, 부모 욕하는 짓이다, 라는 둥의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삶이 있다. 어떤 삶이 있을 때 그것을 틀렸다고 규정하는 순간, 한국에 사는 5천만 인구는 1등부터 5천만 등까지 등수를 메기게 된다. 삶이 아무리 허술해보이더라도, 내가 보기에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나름의 방향을 지닌다. (단지 그가 내 삶에 걸리적거릴 경우 난 거칠게 반응하며 법과 제도를 운운하겠지만) 

대학을 마치기 전에 6개월 동안 광고를 배운 적이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창의적인 어떤 걸 배우고자 소망했는데, 사실 그곳에서 난 찌꺼기 같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남겨두는 어떤 찌꺼기 비스무리한 것을. 그런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다 나와 비슷비슷했던 것이었을까. 그곳에서 나를 가르치는 선생도 내가 되먹지 않은 자질을 갖춘 놈이라는 걸 알아봤을 것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시간이 나면 노가다라도 뛰어봐. 그게 어려우면 몸쓰는 노동을 좀 해보라고. 근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난 그 시설을 졸업할 때까지 노가다를 하지 않았다. <개밥바라기별>에서 인호나 준이는 밥먹듯이 학교를 쉬었다. 난 가장 창의적인 무언가를 배운다는 광고학원에서조차 단 한 번도 결석이나 지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으니, 이 책을 다 읽고 돌이켜 보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내 스스로 내 길을 개척해보려는 생각은 쉬이 하지 못했다. 난 언제나 안전한 길만 고집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결코 훌륭한 길이라던가, 뛰어난 길이라고는 조금도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난 그런 길을 살아오며 부끄러움이 없었으니, 난 그 점을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요즘에 회사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 내가 가진 능력이 너무나 부끄럽다. 회사의 실적이 걱정이 되고, 내 연봉이 걱정이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 상승을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울 만큼 내 능력이 부족함이 부끄럽다. 회사에게 지분을 요구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고 싶다. 그런데 그 전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근본부터 글러먹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난 한 번이라도 제대로 흔들려 본 적이 있는 것일까. 
난 시멘트 덩어리에 내 발을 심어두고 걷고자 했던 건 아닐까. 
애초에 난 내 발을 내딛은 적이 있는가. 
부끄럽다. 

2. 인상깊은 문구
젊거나 나이먹거나 세월은 똑같이 소중한 거랍니다. 젊은 날을 잘 보내세요.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누군가 내면에 지닌 것과 외면에 나타나는 게 다르다는 것은 그가 세계를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 

잘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3. '개밥바라기별' 3줄 평 
- 사람이란 게 참 다양하구나, 나란 놈은 참 좁은 세상에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 한 번 읽고는 왠지 아쉬워서 바로 한 번 더 읽었다. 
- 마음이 좁아진다 느껴질 때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1. 8. 23:54
친구 유통기한
사람이란 게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걸까. 내가 만나면서 계속 볼 수 있는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고, 혹은 아무리 친하게 지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시절에 이르기까지 가장 단짝처럼 지냈던 다섯 동네 친구와 지금은 완전히 연이 끊겨 연락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묘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 중 일부는 서로 연락하고, 나도 또 한 명과는 계속 연락하다가 지금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 아예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는데, 다시 연락하면 이미 끊어진 줄만 붙잡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쉬이 연락할 수 없다. 

친구끼리의 연이라는 것이 보통 부모들 사이에서도 이어지는 터라,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옛 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알고 지내면서 그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오가시곤 했다. 가끔 내게도 한 다리 건너서 그 소식을 전해주시곤 했는데, 대학 시절에 그런 것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여 잠시 한 번 가봤던 것을 제외하면 다시는 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있다. 

이전에도 한 번 옛친구와 만나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던 술을 주고 받으며 각자 어떻게 살아왔을지를 짐작하는 자리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우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얘기하기보단 학창 시절로 돌아가 그 때의 시간과 공간만 회상하다가 돌아왔었다. 속내로는 그 시절이 딱히 유쾌하지 않아 즐겁지는 않았지만, 새벽 내내 웃고 떠들며 다시 만날 것을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다가 새벽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 뒤로는 다신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누구 하나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면, 아마 그 친구와 나와의 실은 완전히 끊어진 것이 확실하다. 그날 나와 친구를 붙잡았던 건 단지 술기운의 힘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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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1. 7. 23:42
조문하러 가는 길 
대구에서 상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차량을 빌렸다. 4명이 아반떼를 타고 가려다 중간에 한 명이 더 끼는 바람에 5명이 가게 되었다. 거칠게 악셀을 밟아도 가는 데에만 4시간이 걸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운전하는 사람은 앉은 자리는 편할 테지만, 신경이 곤두선 채로 4시간을 운전했다. 나머지 넷은 서로 낑겨 앉아 허리에 통증을 느끼며 이동했다. 회사 사람의 가족이 죽음이 이끈 길이지만, 그 길에 늘어서 있는 건 내 허리통증 뿐이었다. 

본디 난 수다스럽지 않지만 수다스러운 분들이 많아 별별 이야기를 했다. 잠시 정신을 놓으면 정치 얘기가 화제가 되는 까닭에, 정신줄을 잡고 가끔 말을 거들어 화제를 바꾸곤 했다. 회사에서 발생한 제품의 이슈 이야기라던가, 건강에 대한 이야기, 가족 이야기, 혹은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런 이야기들은 꺼내놓고 말하기 쉬운 종류이긴 하나, 본디 재미는 없다.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라던가, 영화나 다큐이야기, 음악 이야기, 혹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다지 공감할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내 스스로도 주제를 꺼내놓고 혼자서 오랫동안 떠들어대며 그들을 재밌게 해줄 자신이 없어 함부로 주제를 꺼내놓진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듣는데 집중했는데,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이라던가 혹은 근거가 뭐냐고 캐묻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도 함부로 받아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함께 간 이들 중에 난 가장 어렸다. 나머지 넷은 모두 비슷한 연배이셨고, 나 홀로 그들보다 10년에서 15년이 어렸다. 다른 분들은 모두 이야기에서 어떤 공감대가 있었는데, 그런 점이 전혀 없거나 혹은 피상적인 부분에만 걸쳐 있는 터라 내가 함부로 말을 꺼낼 구석이 없었다. 그 와중에 내가 얘길 꺼내려고 한다면 그들을 흥미롭게 만들어줄 만한 젊은이다운 에피소드라던가, 혹은 유머러스한 이야기일텐데 양쪽에 모두 재주가 없는 터라 난 과묵해지는 쪽을 선택했다. 평소 생활할 때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 회사 팀원들 모두가 날 과묵한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건 그닥 틀린 얘기는 아니다. 

조문을 대충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다른 분들이 만류하였다. 평소 차를 몰지도 않는데다가, 운전 경험도 일천해서 자칫하다간 사고가 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고집을 피워서라도 운전을 했어야 하나, 아니면 그분들 의견을 따르는 게 맞는 건가, 그냥 조문하러 온 선택 자체가 죄라도 저질른 양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문하러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말려도 가겠다고 굳이 왔는데, 정작 조문은 뒷전이 되고 누가 운전을 하냐는 문제로 신경이 선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다. 

거짐 8시간을 쏟아 난 대체 뭘 하고 온 걸까, 텁텁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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