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8. 21. 23:46

저자 : 이승우
출판사 : (주)위즈덤하우스
초판 1쇄 발행 : 2017년 3월 2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3월 6일 

1.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사랑이 마치 물이나 수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면 누군가 파놓은 함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난 사랑에 빠졌어, 라고 말한다. 사랑이 사람이 빠지거나 잠길 수 있는 것인 양 물화시켜 말하는 이런 수사는 사랑의 불가항력적 성격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딘가에 빠진 사람은 무력하다는 인식이 이 문장의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이 결코 사회학 서적도 아니고, 심리학 서적도 아니면, 에세이는 더더욱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단정적인 어조에 따라서 어떤 절대적인 진실에 관하여 밝히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가 쉽다. 이런 종류의 어투는 어디선가 맛본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던가, '우리는 사랑일까' 같은 책을 썼던 알랭 드 보통이 떠오른다. 다만 알랭 드 보통은 상황을 서술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정답을 해설해주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이 책에서 이승우 작가가 서술하는 방식은 어딘지 더 깊숙하고 은밀하다. 강한 편견이 깔려 있으면서도 한국적인 방식을 빌려 표현하자면 알랭 드 보통은 어딘지 이과적인 냄새가, 이승우는 문과적인 냄새가 나는 해설이다. 

이승우 작가의 해설은 어딘지 은밀하면서도 사랑할 때마다 느끼고 있었던 나의 생각을, 그 뻔하면서도 누구나 경험하는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설명함으로서 언어가 갖고 있는 명확한 에너지를 불러 일으켜서 공명시킨다. 

사건이라고? 그렇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거의 온종일 한 사람만을 생각하는 것은 사건이다. 큰 사건이다. 그는 사랑에 걸렸다. 그는 자기 가슴속에 그녀가 가득 차서 거의 자기 자신이 그녀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거처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그의 내부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가 살도록 허락했다는 말이 아니다. 사건은 계약이 아니다. 허락이나 동의가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마치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사랑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장면에서, 그것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허구 혹은 이야기로만 끝난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이승우 작가가 소설의 서사보다도 더 깊이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생각은 단지 어떤 단면적인 행위라던가, 단편적인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있기까지의 어떤 역사로부터 발현되었다. 하나의 생각이 이뤄지기까지 어떤 층위의 사고과정이 있었는지 서술해주고, 그것이 결국엔 발현되는 순간으로 이뤄질 때 소설의 한 챕터가 끝난다. 이 때문에 소설은 매우 단순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단편 소설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로 길어진다. 

이 이야기 내내 나를 사로잡은 것은 각각의 챕터 제목이었다. 그것이 과거 내가 경험했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생각하게 하였고, 대개의 경우 소설은 나 자신도 몰랐던 나의 생각을 입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로 정리해준다. 

이 때문에 소설을 읽고 있는데도 난 소설의 서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거에 사랑했던 존재와 현재 사랑하는 존재 미래에 사랑할 존재에 대한 기억과 상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책이 결코 긴 분량도 아니고, 아주 짤막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즐거운 경험 덕분에 독서 시간이 길어졌다. 

2. '사랑의 생애' 3줄 평 
- 순위 매기는 건 사실 의미 없는 짓이지만, 그럼에도 말하자면, 내가 읽어본 모든 연애 소설 중에 가장 매혹적이고, 공감이 갔다.
- 이 책은 일면 뻔하면서도 선뜻 정리해서 말하는 어려운 사랑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멋진 소설로 옮겨놓았다. 
- 이 책엔 다양한 사랑이 소개된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걸 대변하듯.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