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8. 19. 23:31

저자 : 황정은
출판사 : (주)민음사
초판 1쇄 발행 : 2010년 6월 25일 
전자책 발행 : 2013년 10월 25일 

1. 가난과 착함. 혹은 따뜻한 것에 관하여 
사실 난 가난이 따뜻한 거라 믿진 않는다. 혹은 착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 속에선 새로운 불행이 태어나고, 작은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지는 연계 과정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미소와 대형 마트 한 곳에서 샘플용 고기를 굽고 있는 아주머니의 미소가 서로 다른 것이라 여기진 않는다. 어느 한 쪽은 착한 것이고, 어느 한 쪽은 차가운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라 여기는 건, 마치 야구경기를 응원할 때 아무런 연고 없이 약팀을 응원하는 심리와 별 다를 것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기초하여 승자독식의 구조가 정당화되고,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든 손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는 것은 진심으로 차가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대학생 때 독거 노인, 생계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매주 찾아가서 말동무가 되어주는 봉사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 나란 놈은 사실 착하다거나 공감해준다거나 배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종류라 어떤 생각으로 그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그걸 2년 정도는 꾸준히 했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인상 같은 것을 받았다는 것만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 때 받은 느낌은, 사실, 내가 만나러 간 사람들이 나보다 못한 사람이란 생각도 아니었고, 혹은 나보다 착하거나 선한 사람이란 인상도 아니었고, 그냥 나와 별 다를 것 없는 또 하나의 사람이란 생각이었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어느 정도 위로 받아야만 하는 분량이 있는 지도 모른다. 풍족한 위치(풍족이라는 단어가 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매우 애매모호하지만)에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별 상관 없겠지만, 부족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위로는 과연 어떤 수준일까. 그건 과연 충분하긴 한 걸까.

그걸 부족하다고 인지하는 건 꽤 좋은 발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모든 위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일지도 모른다. 다만 난 그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어떤 오해의 형식으로든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바보같은 행동이 어떤 파동을 일으켜서 도움을 줄지도, 혹은 더 안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2. 소설
소설 얘긴 안하고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백의 그림자'라는 소설은 어딘지 따뜻하고, 보드랍고, 착한 어떤 소설이다. 아마 이 책은 '위로'의 목적이 들어간 책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오독한다.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꽤 따뜻하고, 유치하지도 않고, 어딘가 좋은 소설이다. 

3. 인상깊은 문구  
이 소설은 짧은 페이지 수에도 불구하고 간직하고 싶은 문구들이 많았다. 밑줄 쳐놓고 좋다고 생각한 게 많은데 그걸 죄다 가져오면 포스팅 길이가 평소의 다섯 배 혹은 여덟 배는 될 것 같다. 그래서 일부만 갖고 와서 소개한다. 책이 참 좋으니 직접 사서 읽어보길 권한다. 

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가량 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일 개, 사십 개를 사면 사십일 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십일 개, 백 개를 사면 백한 개, 하며 매번 살 때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준다는 것이었어요. 

은교 씨, 우리도 도네요. 
걷고 있는데요. 
걸으면서 도는 거죠. 
나는 그냥 걷는 것으로 할래요. 
그냥 걸어도 지구는 둥그니까, 결국은 도는 거죠. 
무재 씨, 그렇게 말하면 스케일이 너무 커져요. 
행성도 되고 위성도 되고
뭐가요?
우리가요. 

4. '백의 그림자' 3줄 평 
- 철거민을 향한 따뜻한 시선, 연인 간의 담담한 사랑이 돋보이는 소설 
- 언어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가 섬세하다고 생각한다. 
- 이 소설은 어떤 부분에선 시처럼 읽히는 것 같기도 하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