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7. 8. 23:52

저자 : 편혜영
출판사 : (주) 창비
초판 1쇄 발행 : 2013년 8월 12일 
전자책 발행 : 2013년 8월 26일 

1. 비밀에 관하여 
그 무엇보다 어두운 단편집이었다. 첫 문단을 읽을 때부터 짐작했다. 

벨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부엌에서 뒷물을 하고 있었다. 사타구니에서 나오는 것은 누런 오줌뿐이었지만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아랫도리는 언제나 눅진했다. 그녀는 물기 묻은 아랫도리를 닦지 못한 채 엎드려서 회전의자를 가슴 아래 깔았다. 다리 통증이 심해진 뒤로 바퀴 달린 의자를 이용해 조금씩 움직였다. 의자를 깔고 몸을 길게 뉘어 얼음을 지치듯 손으로 바닥을 밀고 나가는 식이었다. 

사람들이 처하게 된 어두운 현실을 다룬 책이나 영화는 많았지만, 그네들이 생각하는 심상의 어둠까지 표현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생각하기 쉽고, 희망 속에서 밝음을 다시 찾는다. 이 책이 묘하게 느껴지는 건 단편 속 인물 면면이 보이는 어둠이다.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 역시 그네들 못지 않게 어둡지만, 그들이 취하는 태도는 사뭇 미묘하다. 

깊은 지하의 전철역으로 들어가며 그는 다짐했다. 누구에게도 오늘 밤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리라고. 그를 지목한 비밀의 문장에 대해, 그를 아이에게 내몬 양심의 충동에 대해 말이다. 낯선 성기의 감각을 잊지 않고 있는 아이와 그 아이가 들어간 연립주택의 어둠, 그가 돌아나온 좁은 골목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을 내내 비밀로 품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만이 그리고 좁은 골목과 어두운 밤만이 노인이 될 때까지 비밀을 기억할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어둠과 꽤나 어울린다. 홀로 튀는 형상을 취하지도 않고, 어둠을 박차고 나오려고 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들은 그 풍경 속에서 자연스레 어울린다. 

개인적인 감상으론 이런 느낌 때문에 책을 읽기가 정말 어려웠다. 힘들었다. 책을 감상하면서 인물과 환경에 푹 빠져 지내게 되는데, 나 역시 어둠 속에 동화될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나와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보다는 나 역시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들었다. 

소문 속에서 진심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생각과는 다른 것이 되는지, 간절한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일단 말이 퍼지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얘기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어둠의 느낌과 함께 느낀 것은 바둥거리는 생각들이 갖고 있는 한계였다.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어둠은 더 강한 힘으로 몰아친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더 깊은 바닥으로 흡수된다. 그것이 다가오는 방식은 유쾌하거나 참혹하지 않다. 단지 무시되는 어둠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 잘 다뤄졌다. 멋진 글이고 매혹적인 글이지만, 내 스스로가 건강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감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글이다. 정말이지 마약같은 소설이었다. 

2. ‘밤이 지나간다 ' 3줄 평 
- 올해 읽어본 책 중에 가장 우울하다. 
- 읽을 땐 젤리에 걸린 벌레처럼 읽히지 않는데, 책을 덮고 있을 땐 다시 읽고 싶다. 
- 우울함의 한 축은 현실감에서 비롯되었다. 내 주변 사람을 다룬 이야기처럼 와닿는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