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6. 30. 23:48

저자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 1996년 8월 20일 

1. '스스로를 파괴함'을 생각하며 
나도 어릴 적엔 죽음를 고려해본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생각한 죽음은 삶이 힘들다거나 견디기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것을 통해 내가 끝장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공포의 끝단에 달려 있는 쾌감(이걸 쾌감이라 써도 되는 감정인가?)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우리 집은 아파트였는데, 옥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옥상 난간이 있었다. 난간에 올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가슴 정도 높이 되는 난간은 가볍게 힘을 주면 발을 짚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면? 한 발 짝만 걸어가면 죽음이었다. 죽음. 그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극도의 공포감이었다. 공포가 크면 클 수록 왠지 모르게 그 공포의 끝단에 접근하고 싶었다. 난간에 서서 걸어가면서, 내가 만일 여기서 떨어지면 그건 어떨까. 라는 공포를 맛보곤 했다. 이 공포는 아주 미묘했다. 안전한 상태가 되고나면 다시금 그 공포를 맛보고 싶단 기분을 느끼곤 했다. 혹시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난 걸까? 

김영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흥미로운 실험을 한 것 같다. 만일 우리가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단지 선택으로 보게 된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물론 이 책은 자기계발 도서가 아니라서, 그럴싸한 영웅담이 서술되진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소설 속 유디트'들'은 편안하지도, 억울하지도, 후련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으며 단지 건조하고 냉정한 표정을 짓는다. 상상의 범주 속에서 쉽게 발견되는 표정이 아니기 때문에, 두고 두고 살펴보고 싶은 표정이다. 

죽음에 아무런 장벽이 없는 순간, 삶은 잉여가 된다. 특별히 두려움에 속박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는 건 자유로워지고, 생각은 제한이 없다. 얼마 전에 읽은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가 생각난다. 그 책엔 퇴사를 당연한 선택으로 생각하는 순간, 회사 생활이 잉여가 된 직장인이 묘사되어 있다. 기존의 생각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자유롭고 또 자유롭다. 

2. 한 가지 궁금했던 점. 소설 맨 처음.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은 대체 왜 등장하는 걸까? 
이 책이 5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 중 첫번 째 장이 '마라의 죽음'이라는 부분이다. 1793년에 제작된 유명한 유화 <마라의 죽음>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마라의 표정에 집중한다. 편안하지도, 억울하지도, 후련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건조하고 냉정한 표정이다. 한 때 미술 교과서에서 <모나리자>의 표정에 집중했던 것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마라의 표정을 본다. 덕분에 나도 구글을 통해 <마라의 죽음> 그림을 계속 관찰했다. 

소설에 특별한 설명은 없다. 단지 마라의 표정이 죽음을 묘사하는 적정선을 지키고 있다고 쓰여있을 뿐이다. 

내 생각엔 이 소설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에 관해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에 대해 들어가기 이전에, 죽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에 관해 일단 생각해보자는 것. 죽음의 표정을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발걸음을 옮길 때, 아주 평범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에 평범함이 어딨겠냐만은 적어도 픽션에서 맞이하는 뻔한 죽음으로 이야기를 이해하지 않도록 한다. 조금이라도 그 죽음에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다시금 상상하고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3. 인상깊은 문구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소설은 삶의 잉여에 적합한 양식이다. 

"사람은 딱 두 종류야.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 어느 쪽이 나쁘냐면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나빠. 그건 K도 마찬가지야. 너희 둘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종자야.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

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멋진 작업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내게 구원일 수는 없었어요."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4.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3줄 평 
- 죽음의 표정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발견한 소설 
- 죽음, 혹은 스스로를 파괴함에 장벽을 제거함을 통해 삶에서 오히려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이 발견된다. 
- 난 갇혀 있는 사람일까 혹은 자유로운 사람일까.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