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0. 30. 23:32
고통받기 위한 방법
내 앞에 두 명이 있을 때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고통을 찾는다. 어떤 경우에 난 한 명과 동맹을 맺고, 또 어떤 경우에 난 한 명과 적이 되며, 또 어떤 경우에 그 둘은 모두 나의 동맹이거나 적이 된다. 일반적인 경우, 이런 경향은 명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자리잡는다. 인간관계는 맑은 날씨라기보단 흐릿한 안개 속을 걷는 비루한 여행자의 느낌이다. 가끔 안개를 헤치고 누군가 나에게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 있긴 하다만, 그 때 그가 웃고 있는지 비웃고 있는지 명확치 않아서 소름끼치기도 하고 혹은 즐겁기도 하다.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잡담을 나눌 때도 그렇고, 같이 커피를 마실 때도, 혹은 별 말 없이 앉아있을 때도, 어딘지 모르게 나라는 놈은 그 친구에게 집중하는 순간 내 고통받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생각해낸다. 

이런 고통을 향한 생각은 무리 속에서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나를 두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았을 때 안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혹은 나 이외의 누군가가 홀로 떨어져 있을 때 안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며, 아무도 그런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안심하는 마음이 드는데, 이 모든 안심 속에는 그 바탕이 되는 고통이 있다. 

행복하다는 감각은 사실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고통의 감각이 극소화되었을 때 느껴지는 것이란 생각도 가끔 한다. 그러니까, 행복은 뭔가를 잊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잊는 것이며, 그렇게 잊어버린 것으로부터 가만히 존재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걸 보통 내향적인 성향이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걸까? 다들 고통을 향해서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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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국내소설2017. 10. 29. 23:36

저자 : 천운영

출판사 : (주)창비
초판 1쇄 발행 : 2011년 3월 18일 
전자책 발행 : 2013년 3월 15일 

1. 찝찝하고 쌉싸름한 다락방의 향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몇 달 전에 읽었다. 그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공통되게 느낀 것이 있다. 조직의 가장 윗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동물을 잡는 역할을 하던 사람이 백정이라 들었다. 조선시대 백정은 가장 천한 사람이었다. 피를 보는 일이었고, 거친 일이었다. 칼을 쓰는 일이었고, 비명을 듣는 일이었다. 굳이 조선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은 분명 그 사회를 조직함에 있어 필수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귀하게 취급받지 않는다. 그 시대에도 천하게 여겨지며, 후대에는 더더욱 욕을 먹는 존재들이다. 

소설 <생강>은 다락방이란 이미지를 교묘히 사용한다. 개인적으로 다락방은 참 따뜻한 느낌이다. 예전엔 다락방이라는 이름으로 드라마도 있었던 것 같다. 또 만화에서도 좋은 이미지로 자주 등장했다. 나도 다락방을 좋아하는 편이다. 할머니네 집에 다락방이 있었다. 창고처럼 쓰이는 곳이었고, 먼지도 자욱했고, 빛도 잘 들지 않아서 곰팡네도 나는 곳이었다. 근데 이런 다락방을 이처럼 어두침침한 혹은 쾌쾌한 이미지로 이용할 줄이야. 

소설의 플롯은 그 어떤 소설보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한 때 이슈가 되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의 사례를 바탕으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인물들을 창조해서 소설로 써내려간 것이다. 작가는 실제로 이근안 씨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던 경험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본인조차도 이 내용을 증명해준 것은 아니기에, 이 소설의 내용은 이근안 씨와는 같은 듯 완전히 다른 내용일 것이다. 

고문기술자였던 '안'이 사회적으로 고발되고 내쳐진 이후에 자신의 아내가 일하는 미용실 위 다락방에 숨어 몇 년이나 지내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딸과 아내가 겪는 일 그리고 그들의 심리를 묘사하며,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지, 그리고 그들을 찾아오는 피해자들과의 관계를 묘사하여 위로(?)의 과정을 그리는 내용이다. 

꽤 어두침침한 과거를 그린 내용이라 어두운 내용이 잔뜩 들어갈 것 같긴 한데, 생각보다 컴컴한 내용은 아니었다. 살면서 가장 어둡고 끔찍한 소설이라 느꼈던 편혜영의 <밤이 지나간다>에 비교하면 오히려 희망과 빛이 살아있는 소설이었다. 아마 소설이 묘사했던 것이 피해자의 시선이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 혹은 제 3자가 끼어들어서 바라보는 시선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조금은 현실감이 사라지고, 게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꽤 재밌는 책이었다. 

2. '생강' 3줄 평 
-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소설. 
- 스케일이 커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단순한 플롯으로 이런 긴 글을 써내려 간 게 대단해서. 
- 90년대 대학을 다닌 작가였다는 것에 2번째로 놀랐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걸까.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0. 28. 23:58
자유의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걸로 하겠다"는 장그래의 가치관은 따져보면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잔혹한 논리이고 절대로 사회적으로 찬양되어서는 안 될 위험한 이데올로기다(누가 좋아할 논리겠는가). 그러나 저 말은 온몸을 내던지며 사회의 장벽에 맞서 싸워온 이가 자기 자신을 추스리며 했던 다짐이기에 정서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문학동네, 2015

열심히한다는 말이거나, 혹은 내게 주어진 범주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말, 혹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위대한 사업가가 된다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싹튼 어떤 희망 혹은 반복된 이야기 체계 같은 것이었다. 가끔 5천 만 인구 중에 10명 남짓하게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경우가 있다. 훌륭한 생각과 함께 위대한 기업을 성장시키고 본인도 큰 돈을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게 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이다. 

모든 종류의 기획을 꿈꾸는 사람들, 사업을 꿈꾸는 사람들, 큰 돈을 벌려는 사람들, 자수성가 할려는 사람들이 본받으려고 하는 인간상이다. 그런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어떤 엄청난 찬스일 수도 있고, 혹은 그의 위대한 생각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엄청난 인맥이라던가 또는 너무나 당연한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며(물론 부정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에 따라 그의 자유의지를 많은 사람들이 찬사하는 것일 진대. 

내가 만일 그와 유사한 인생을 산다 하여 그의 삶의 경로를 좇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은 그의 아류인가? 혹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인가? 

삶은 명백한 것인가? 혹은 완전히 흐리멍텅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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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