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1. 7. 23:42
조문하러 가는 길 
대구에서 상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차량을 빌렸다. 4명이 아반떼를 타고 가려다 중간에 한 명이 더 끼는 바람에 5명이 가게 되었다. 거칠게 악셀을 밟아도 가는 데에만 4시간이 걸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운전하는 사람은 앉은 자리는 편할 테지만, 신경이 곤두선 채로 4시간을 운전했다. 나머지 넷은 서로 낑겨 앉아 허리에 통증을 느끼며 이동했다. 회사 사람의 가족이 죽음이 이끈 길이지만, 그 길에 늘어서 있는 건 내 허리통증 뿐이었다. 

본디 난 수다스럽지 않지만 수다스러운 분들이 많아 별별 이야기를 했다. 잠시 정신을 놓으면 정치 얘기가 화제가 되는 까닭에, 정신줄을 잡고 가끔 말을 거들어 화제를 바꾸곤 했다. 회사에서 발생한 제품의 이슈 이야기라던가, 건강에 대한 이야기, 가족 이야기, 혹은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런 이야기들은 꺼내놓고 말하기 쉬운 종류이긴 하나, 본디 재미는 없다.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라던가, 영화나 다큐이야기, 음악 이야기, 혹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다지 공감할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내 스스로도 주제를 꺼내놓고 혼자서 오랫동안 떠들어대며 그들을 재밌게 해줄 자신이 없어 함부로 주제를 꺼내놓진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듣는데 집중했는데,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이라던가 혹은 근거가 뭐냐고 캐묻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도 함부로 받아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함께 간 이들 중에 난 가장 어렸다. 나머지 넷은 모두 비슷한 연배이셨고, 나 홀로 그들보다 10년에서 15년이 어렸다. 다른 분들은 모두 이야기에서 어떤 공감대가 있었는데, 그런 점이 전혀 없거나 혹은 피상적인 부분에만 걸쳐 있는 터라 내가 함부로 말을 꺼낼 구석이 없었다. 그 와중에 내가 얘길 꺼내려고 한다면 그들을 흥미롭게 만들어줄 만한 젊은이다운 에피소드라던가, 혹은 유머러스한 이야기일텐데 양쪽에 모두 재주가 없는 터라 난 과묵해지는 쪽을 선택했다. 평소 생활할 때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 회사 팀원들 모두가 날 과묵한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건 그닥 틀린 얘기는 아니다. 

조문을 대충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다른 분들이 만류하였다. 평소 차를 몰지도 않는데다가, 운전 경험도 일천해서 자칫하다간 사고가 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고집을 피워서라도 운전을 했어야 하나, 아니면 그분들 의견을 따르는 게 맞는 건가, 그냥 조문하러 온 선택 자체가 죄라도 저질른 양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문하러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말려도 가겠다고 굳이 왔는데, 정작 조문은 뒷전이 되고 누가 운전을 하냐는 문제로 신경이 선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다. 

거짐 8시간을 쏟아 난 대체 뭘 하고 온 걸까, 텁텁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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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