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1. 5. 23:52
어린 시절의 나무 
내가 성당에 처음 갔던 건 엄마 뱃속에서부터였고 그 때문에 아마 1살 때부터도 성당에 다녔을 거라 예상은 하고 있지만, 정작 내가 처음 성당에 다녔던 기억이 나는 건 내가 7살 즈음 때부터이다. 엄마를 따라 갔던 성당 정문 옆엔 어른 키보다 3배 정도 되는 수준의 아담한 나무가 하나 있었다. 마치 아이들이 밟고 올라가라는 듯이 친절하게 둘러쳐 있던 벽돌담을 올라서면 그 나무에 올라갈 수 있었는데, 나와 내 친구들 둘은 자주 그곳에 올라가서 놀았다. 딱 세 명 정도가 올라가기 적당한 크기의 나무였던 것 같다. 그 아담하면서도 올라가 있으면 이미 어른들의 키보다 높이 서 있는 그 나무에 올라가면, 근처에 서 있는 어른들이 작게만 느껴져서, 왠지모를 고양감에 빠져들곤 했다. 성경엔 신이 아이들을 사랑하여, 아이들을 어른들보다 특별히 여겼다는 서술이 나와 있는데, 그 당시 난 그 나무 위에 올라 특별한 애정을 느낀 것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진 꽤 친하게 지내는 애들이 둘이 있어서 셋이서 함께 나무를 타고 다니거나 근처에서 풀을 따서 노는 걸 즐겨 했다. 성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정원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서 다른 그 어느 곳보다 멋진 곳이었다. 아이들을 배려해서, 성당 한 켠엔 나와 같은 6살에서 8살 아이들을 위한 나무도 있었지만 10살을 위한 나무와 12살을 위한 나무도 배치되어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가 들면 각자의 키에 맞게 배치된 곳을 올라가 나의 능력을 뽐낼 수 있었다.

그곳은 보기 드물게 풀이 무성하고 나무가 많으며, 걷기에 아름다운 곳이었다. 비가 오면 작은 웅덩이들이 군데 군데 만들어지곤 했는데, 그곳엔 개구리도 종종 발견되었다. 

그곳은 온전히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성당에서 미사가 끝나면 그곳으로 달려나와 놀곤 했다. 그런 시골 성당에서도 몇몇은 주말에도 학원을 다니는 바쁜 일정에 빠지곤 했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아이들은 그 나이에 어울리는 축복에 휩싸여 함께 숲에서 놀 수 있는 행운을 맛봤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올라갈 즈음에, 아이들의 정원보다는 성당의 거대함을 원했던 사제가 그곳에 부임했고, 그 정원이 송두리째 날라가 버렸다. 물론 내가 사랑했던 나무들도 모두 베어지거나 옮겨졌다. 아이들이 자주 밟고 올라갔던 흔적이 있던 나무는 판매의 용도엔 전혀 맞지 않았던 탓인지 완전히 베어져서 버려졌다. 

난 고해성사실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가진 성당이 그런 식으로 훼손되고 망가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화를 내는 것에 대해서 부끄럽고 반성한다는 회개를 했다. 그 당시에 난 어른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조차도 나쁜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생각이 합리적인 생각이라 여기기보단, 그저 나쁜 일이라 여겼다. 신부님은 내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내게 주의 기도를 10번 읊으라고 했을 뿐이었다. 

공사는 3년이 걸렸다. 나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은 아름다운 숲에서 임시 콘테이너로 대체되었다. 그 사이에 많은 아이들이 나이를 먹었고, 많은 노인들이 죽어갔다. 그 때 우리 아파트의 같은 통로에 사는 할아버지도 죽음을 맞이했고,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형이 이사를 갔다. 주말만 되면 어머니의 봉사를 위해 난 강제로 성당에서 살아가는 운명을 맞이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이 함께 어울리는 곳은 숲이 아닌 컨테이너박스였다. 친구들과 난 같이 놀 장소를 잃었고, 그리고 그 둘도 어느새 놀이공간을 바꿔 나와는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완성된 성당은 거대했다. 아름다웠고, 웅장했다. 숲은 없었다.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긴 했지만, 아이들이 밟고 올라갈 정도의 적당한 사이즈는 되지 못했다. 3년 새 커버린 내 키로도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높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3년 새 컸지만, 나무는 그 가지를 저 멀리 하늘로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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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