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1. 6. 23:32
별이 보이는 밤 
아직도 난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잠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보았던 그 별들을 잊지 못한다. 동기들과 난 4열 종대로 걸어가는 중이었고, 군화가 아스팔트 바닥에 닿아 따박따박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때 우리는 당연히 각 잡힌 훈련병들이라 누구 하나 잡담하며 걸어가는 이가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사위는 적막했고 하늘은 맑았고 그 하늘엔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처럼 수만 개의 별로 가득했다. 

설마 내가 호주라던가 몽골 같은 곳도 아니고, 한국에서 그런 풍경을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건 정말 장관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 과학만화 책에서 읽었던 딱 그런 풍경이었다. 사방은 사람의 잡담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사람으로 가득했고, 하늘엔 별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별들로 가득했다. 

물론 내가 넋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단순한 순간이었다. 동기들을 따라 걸어가며 눈동자만 움직여 하늘을 훔쳐보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때 본 그 풍경이 너무나 내가 처한 상황과 이질적이어서, 또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한참이 지난 지금도 계속 그 때의 풍경을 떠올린다. 내가 정말로 별들을 보긴 했던 걸까. 왠지 기억이 의심스러워진다. 

그 뒤로 한참 뒤에 이집트에 간 적이 있다. 이집트에 가면 사방으로 불빛이 없어서 하늘만 맑으면 별이 무척 잘 보인다고 했다. 난 군대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집트에서도 내게 같은 얼굴을 보여줄 거라 굳게 믿었다.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사막 한 가운데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늘을 봤다. 실망했다. 하늘엔 오리온자리라던가, 북두칠성이라던가, 처녀자리 같은 별들이 꽤 보일 법 했지만, 내가 군대에서 봤었던 그 쏟아질듯한 별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게 전부야. 사실 네가 봤던 건 다 거짓이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어릴 적엔 하늘에 별이 많았다. 내 삶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축복이라 여겨지는 건 아마 내가 시골에 살며 밤하늘을 볼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건 서울이라던가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행복이었다. 저녁에 심심하면 혼자 아파트 단지를 걸어다니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쳐다보는 건 하늘이었다. 하늘엔 항상 북두칠성이 보였다. 너무 뻔뻔할 정도로 잘 보였기 때문에, 저건 원래 잘 보이는 별인가보다. 건방진 별이네, 라고 생각했었다. 

생각해보면 별을 보는 건 진짜 외로운 행동인 것 같다. 친구와 함께 밤길을 걸었던 적이 참 많고, 그 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북두칠성도 보였던 것 같다. 친구랑 난 별 시덥잖은 얘길 하며 길을 걸었다. 만화 얘기도 했고, 다른 친구 얘기도 했고, 내가 들었던 흰 소리도 나불거렸다. 근데 그 많은 시간동안 함께 하늘을 보면서 별 얘길 했던 기억은 없다. 친구랑 헤어지면 집에 가는 길에 혼자 별을 보곤 했다. 친구도 아마 같은 별을 봤을 거라 생각한다. 

군대 때 이후론 사실 별을 거의 못봤다. 내가 볼 수 있던 건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인공위성 정도였다. 그마저도 도심 한가운데에선 거의 보기 힘들었다. 먼지도 많고, 하늘도 흐릿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호주에 한 번 가보고 싶은데, 굳이 딴 걸 볼 필요 없이 논산에서 봤던 그 별을 보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논산에 돌아갈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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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