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1. 25. 23:55
실존하는 기쁨
그는 자꾸 내 연인처럼 군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와 팔짱을 끼고 머리를 맞대고

가만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아는 사람을 보았지만 못 본 체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확신은 없다

아파트 단지의 밤

가정의 빛들이 켜지고 그것이 물가에 비치고 있다 나무의 그림자가 검게 타들어 가는데

이제 시간이 늦었다고 그가 말한다
그는 자꾸 내 연인 같다 다음에 꼭 또 보자고 한다

나는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고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 황인찬, <희지의 세계> 中

산책한답시고 동네 밤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걷고 있는 건 지금 저 편에 있는 내 육체이고, 실제 생각하고 있는 나는 그 위에 둥둥 떠서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그 둥둥 떠 있던 내가 걷고 있는 내 옆에 다가와서 말해준다. 

너 괜찮니 

사회는 정신 집중을 요구하지만, 실상 내가 가장 원하는 건 집중을 완전히 풀어 헤친 상태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멍 때리는 상태. 걸을 때 그런 상태가 자주 찾아오는 것 같다. 그 때 둥둥 떠 다니던 내가 말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웬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목소리는 울렁이는 물결같다 귀를 갖다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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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1. 24. 23:50
주식을 하면서 드는 생각
- 내가 다니는 회사 말고는 다 잘 나가는 것 같다. 
- 우리 나라에 좋은 기업이 이렇게나 많았나?
- 이렇게 주식이 잘 나가고, 영업이익도 잘 나가는 기업에 다니면 행복할까? 
- 직원들에게 복지나 배당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 걸까? 
-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요즘 핫한 전기차 부품, IT 부품, 제약, 의료장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릴까? 
- 이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애사심이 강할까? 아니면 퇴사하고 싶어서 안달일까? 
- 이런 회사에 다니는 사람과 전문 주주를 비교해보면 누가 더 회사를 잘 아는 걸까? 
- 내가 왜 대학생 때는 주식을 안했을까. 
- 대학생 때 주식을 했다면, 기업 선택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 아니, 그래도 그 땐 그냥 대기업에 가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 내 삶이 주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 회사에 다니는 모든 개개인도 주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모든 인간 관계가 주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여행이나 쇼핑 같은 것도 주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공부를 하는 메커니즘도 주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그냥, 주식이 인간의 삶을 완전히 베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그래서 원래 잘 나가는 놈이 끝까지 잘 나간다. 
- 근데 한참 지난 후에 보면 원래 잘 나가던 놈이 끝까지 잘 나간다. 
- 부모(모기업)가 잘난 기업은 정말 잘 나간다. 
- 그래도 아주 튀는 놈들이 있는데, 사람이나 주식이나 다 그런 놈이 있다. 
- 내가 참 별 생각을 다 하는구나... 

- 블로그 성격 상 왠만해선 주식 얘길 안꺼내지만, 사실 회사일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중 상당 수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어지간히도 내 생각이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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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시, 에세이2017. 11. 23. 22:46

저자 : 김하나
출판사 : 김영사
초판 1쇄 발행 : 2015년 10월 20일 

1.  컨셉잡고 쓴 에세이?
에세이도 이젠 여러 권을 읽다보니, 작가마다 자신의 스타일이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김민섭의 <대리사회> 같은 경우, 남들이 쉽게 경험하기 힘들지만 작가가 본인의 경험과 깊은 성찰로 쓰여진 책이라 아주 깊숙한 부분까지 읽히는 책이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성찰을 짧은 글에 잘 녹여내어 어딘지 스며드는 맛이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밤'이라는 글자가 에세이와 참 어울린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의 정석이다. 내가 가장 많이 읽은 게 그의 에세이다 보니, 어떤 에세이를 보아도 그의 에세이와 비교하게 된다. 무라카미의 에세이엔 잘 써야겠다는 힘이 안느껴진다. 언뜻 읽으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읽고 있으면 마음도 편하고, 그의 가벼운 농담이나 생각도 흔치 않은 거라 재밌다.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는 과학적 지식, 본인의 의학 관련 경험, 그리고 문학의 조예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쓰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면역과 문학이 한데 어우러져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넘쳐난다. 

이 외에도 김소연, 장강명, 김민철 등등 올해 들어 엄청나게 많은 에세이를 읽었는데, 김하나가 쓴 에세이는 이제껏 본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에세이가 어딘가 이미 쓰기 전부터 '결론'을 그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아주 명쾌하게 파고드는 컨셉과 이 컨셉을 잘 그려내주는 훌륭한 소재들 7~10가지 정도가 글 하나에 붙어 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소재의 다양성이 훌륭하다. 몇 가지 이야기들은 그냥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평범한 얘기도 있고, 그 글이 내려놓은 결론도 뻔한 경우도 종종 있다. 

(약간, 카피라이터스러운 느낌이 난다.) 

이 책엔 못해도 40가지 정도의 다양한 글이 있는데, 이 글들 중에 결론이 참신했다거나 혹은 내가 공감이 가는 것인 경우엔 아주 잘 읽히고, 또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근데 사실 너무 팩트(일종의 근거랄까)가 글의 대부분이라서, 대체 작가 얘기는 어디에 있는 건지, 작가의 본심이라던가, 어딘지 모를 숨겨진 반전 같은 글, 그런 걸 찾기가 좀 어려웠다. 솔직히 난, 책에 밑줄 그으면서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엔 이미 저자가 보이진 않아도 어디에 줄을 그어야 할지 하나하나 지적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딱히 밑줄 그을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글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사실 다른 어떤 에세이들보다 높은 것 같다. 저자가 엄청난 박학다식한 박사님이거나, 혹은 매우 성실한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에세이를 써보고 싶단 생각도 들긴 했는데, 무식하면서도 게을러터진 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2.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3줄 평 
- 저자의 박학다식`잡다구레한 지식에 박수를. 
- 어떤 얘긴 뻔하고, 어떤 얘긴 흥미롭다. 에세이가 원래 그런 거지. 
- 솔직히 말하면 책 초반은 올해의 책 10선에 꼽고 싶을 만큼 참 좋았다. 중후반부터 힘이 빠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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