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1. 22. 21:00
손금 읽기
볼수록 아득하다, 천 갈래 만 갈래 길 
홀로 헤쳐 가야만 할 탯줄 뗀 그날 이후
해종일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댈 그 짬에도.

질척대는 진흙탕 길 천 년토록 다졌던가.
에움길은 질러가고, 오르막은 건너뛰는
확 바뀐 생의 지형도 그런 아침 꿈꾸며. 

겨운 하루 갈아엎고 어둑한 터널도 지나
아프게 새겨 넣는 굳은살 박인 손바닥에
실금의 잔물결 따라 푸른 맥박 다시 뛴다 
- 김범렬

가끔 친구랑 손금을 읽곤 한다. 삼지창이니, M자라느니 이런 저런 해석을 내놓는다. 손금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는 미래는 예측하는 주제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내 과거에 대해선 거의 생각하진 않았지.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1. 21. 21:00
커피 한 잔 
한국 커피 가격이 비싸다, 비싸다 말이 많지만, 사실 유명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요즘 웬만한 곳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싼 건 800원부터 시작해서 대충 3,000원이 넘지 않는 커피 마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익선동, 성수동 같은 요즘 뜨는 상권에 가면 카페들이 즐비한데, 이런 곳에서 커피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에 가도 저렴한 커피 마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비싼 건 사람들이 중간 마진을 많이 챙겨서라기보단, 부동산 문제가 더 크다. 흔히들 이야기 하는 스타벅스 커피 값에 대한 문제도  <골목의 전쟁>이라는 책에서 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스타벅스는 스스로를 '문화를 팔고 공간을 임대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미국의 스타벅스는 한국보다 매장 면적이 작다. 한국은 상당수가 231m²(약 70평) 이상인데 반해, 미국은 132~165m²(약 40~50평)에 불과하다. 한국 소비자들은 좌석을 선호하고, 테이크아웃 비율이 미국이나 유럽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서 회전율이 낮기 때문에 매장 면적이 더 큰 것이다.
1. 김영준 <골목의 전쟁>, 스마트북스, 2017

그래서 한국에서 커피 장사를 하려면 애초에 건물주로서 장사를 하라는 말도 나오는 것 같다. 어디 커피 뿐이겠는가. 한국에서 익히 알려진 착한 가격(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의 음식을 취급하는 곳에 가서 그 비결을 물었더니 결국 건물주였다는 농담이 인터넷에선 흔히들 오고 간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다 보니, 내 몸 하나 건재할 수 있는 곳이 없는 형편이다. 출산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지만, 여전히 인구는 증가하고 있어서 2030년은 되어야 한국의 인구가 떨어지기 시작한단다. (생산가능 인구는 올해를 기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지만) 오히려 땅의 소유주를 기준으로 삼으면 생산가능 인구를 벗어난 노인들이 더 많은 땅을 갖고 자본소득을 거두고 있으니, 땅 값이 떨어지지 않고 마지막 끈을 잡고 있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래저래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는 게 커피인지, 부동산 임대의 맛인지 잘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여행 가서 특별히 가격 생각하지 않고 커피 한 잔 하는 게 한국에서 마시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거기엔 어떤 다른 부담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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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1. 20. 21:00
시간
멀어지는 별을 그리워했다 

안 들리는 노래를 기록했다
도달하지 않은 별의 점을 쳤다 

미래의 눈물을 
왼쪽 손목에 발랐다
멎은 심장 위에 
흰 깃털을 그려넣었다

빙하들이 녹아내렸다
아무 대가도 없이 
- 박시하,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中

시간이 지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몇 없었다는 생각을 받는다. 여행을 간다거나, 혹은 새로운 책을 읽을 때도, 내가 했던 어떤 선택이라는 것이 실제론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내가 결정받아졌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나이가 들면 선택에 제한이 생기고, 이 때문에 어릴 때는 선택의 자유를 느끼며 더 적극적으로 살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근데 또 막상 내가 어린 시절을 되새김질 해보면, 그 때에도 그 때 나름대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의 한계가 존재했다. 부모의 영향도 있었고, 친구의 영향도 있었고, 혹은 내 스스로가 느끼고 있던 어떤 심리적인 제한선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런 걸 모두 깨버리고 다른 선택을 할 수야 있었겠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좋은 선택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삶은 목적일까. 선택은 그 목적을 위한 걸까. 좋은 선택을 해야 할까. 만일 삶이 목적이 아닌 것이라면, 그 많은 선택들은 대체 어떤 의미로 나열되며, 내게 시간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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