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1. 23. 22:46

저자 : 김하나
출판사 : 김영사
초판 1쇄 발행 : 2015년 10월 20일 

1.  컨셉잡고 쓴 에세이?
에세이도 이젠 여러 권을 읽다보니, 작가마다 자신의 스타일이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김민섭의 <대리사회> 같은 경우, 남들이 쉽게 경험하기 힘들지만 작가가 본인의 경험과 깊은 성찰로 쓰여진 책이라 아주 깊숙한 부분까지 읽히는 책이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성찰을 짧은 글에 잘 녹여내어 어딘지 스며드는 맛이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밤'이라는 글자가 에세이와 참 어울린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의 정석이다. 내가 가장 많이 읽은 게 그의 에세이다 보니, 어떤 에세이를 보아도 그의 에세이와 비교하게 된다. 무라카미의 에세이엔 잘 써야겠다는 힘이 안느껴진다. 언뜻 읽으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읽고 있으면 마음도 편하고, 그의 가벼운 농담이나 생각도 흔치 않은 거라 재밌다.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는 과학적 지식, 본인의 의학 관련 경험, 그리고 문학의 조예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쓰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면역과 문학이 한데 어우러져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넘쳐난다. 

이 외에도 김소연, 장강명, 김민철 등등 올해 들어 엄청나게 많은 에세이를 읽었는데, 김하나가 쓴 에세이는 이제껏 본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에세이가 어딘가 이미 쓰기 전부터 '결론'을 그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아주 명쾌하게 파고드는 컨셉과 이 컨셉을 잘 그려내주는 훌륭한 소재들 7~10가지 정도가 글 하나에 붙어 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소재의 다양성이 훌륭하다. 몇 가지 이야기들은 그냥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평범한 얘기도 있고, 그 글이 내려놓은 결론도 뻔한 경우도 종종 있다. 

(약간, 카피라이터스러운 느낌이 난다.) 

이 책엔 못해도 40가지 정도의 다양한 글이 있는데, 이 글들 중에 결론이 참신했다거나 혹은 내가 공감이 가는 것인 경우엔 아주 잘 읽히고, 또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근데 사실 너무 팩트(일종의 근거랄까)가 글의 대부분이라서, 대체 작가 얘기는 어디에 있는 건지, 작가의 본심이라던가, 어딘지 모를 숨겨진 반전 같은 글, 그런 걸 찾기가 좀 어려웠다. 솔직히 난, 책에 밑줄 그으면서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엔 이미 저자가 보이진 않아도 어디에 줄을 그어야 할지 하나하나 지적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딱히 밑줄 그을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글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사실 다른 어떤 에세이들보다 높은 것 같다. 저자가 엄청난 박학다식한 박사님이거나, 혹은 매우 성실한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에세이를 써보고 싶단 생각도 들긴 했는데, 무식하면서도 게을러터진 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2.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3줄 평 
- 저자의 박학다식`잡다구레한 지식에 박수를. 
- 어떤 얘긴 뻔하고, 어떤 얘긴 흥미롭다. 에세이가 원래 그런 거지. 
- 솔직히 말하면 책 초반은 올해의 책 10선에 꼽고 싶을 만큼 참 좋았다. 중후반부터 힘이 빠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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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