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힘새를 날게 하는 건날개의 몸일까 새라는 이름일까구름을 띄우는 게구름이라는 이름의 부력이라면나는 입술이 닳도록네 이름을 하늘에 풀어놓겠지여기서 가장 먼 별의 이름을잠든 너의 귓속에 속삭이겠지나는 너의 비행기네 꿈속의 양떼구름입술이 닳기 전에 입맞춤해줄래?너의 입술일까 너라는 이름일까잠자리채를 메고 밤하늘을 열기구처럼 솟아오르는나에 대해-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시집 中 -
가끔 그런 질문을 주고 받곤 했다. "날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같은 질문을 받으면 딱히 내가 그것에 답할 수 있는 요량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좋아하는 건 존재 그 자체이다. 따라서 존재가 갖고 있는 어떤 분리된 속성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왠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내가 만일 그녀의 손을 좋아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의 손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그 중에 마음이 드는 손을 고르라고 한다면 난 과연 그녀의 손을 고를 수 있을까. (어쩐지 가정이 끔찍하게 들린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건 그녀라는 존재를 가정한 상태에서의 그녀의 손이다. 따라서 그녀의 좋아하는 부분을 말하라고 하는 그 순간에도, 난 언제나 전체적인 측면에서의 그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름은 뭔가 묘하다. 이름은 어딘지 주문과도 같은 속성이 있다. 옛 설화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고 알고 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건 일종의 마법 주문이었다는 것이다. 사물에 명확한 이름을 붙임을 통해 사물은 자유로운 존재에서 지상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속박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무척 추상적인 말이고, 어딘지 이상한 말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꽤 내 마음에 든다. 실제로 나라는 존재가 실존적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게 이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군 시절 잠깐 내가 번호로 불렸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어딘지 내 스스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라는 물질은 남아 있지만 정신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할 때, 이름은 항상 묘한 느낌을 준다.
전화를 할 때마다 난 그 사람의 이름, 혹은 그 사람의 별명을 부른다. 그 묘한 울림이 내게 감동을 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는 내 안에서 살 수 있고, 나도 그 안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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