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1. 4. 23:39
산책하는 밤
우리는 좁은 눈길을 따라 걷고 있었어요 우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는 신호등이고요 발길이 뜸한 열두 시를 횡단하며 눈 밖으로 뻗은 눈빛의 구조를 살펴봤어요 구불거리는 곡선들이요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표면들을 구불거리지 않는 직진의 방법으로요 우리는 매일 다른 입을 열었습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키스는 퀴즈처러 맞혀졌어요 놀이터에 길고 짧은 혀를 세웠고요 미끄럼을 타는 행동들 사이에서 빨라지는 수직의 궤적을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아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저앉은 바닥 위에 벤치들이 주저앉았습니다 벤치 위에 주저앉은 우리는 숨을 코밑까지 잘라 냈고요 별다른 이유 없이
우리는 좀 더 구석진 밤이 되어 갔어요 우리는 비닐 같은 서로의 몸을 끌어다 덮었고요 발 디딜 틈 없이 밤의 고요들이 북적이고 있었고요 우리를 열고 나간 밤은 돌아오지 않았고요 

올해 초에 일본에 갔던 기억이 난다. 연인과 함께였다. 시인이 쓴 것처럼 산책하는 모습으로 길을 걷진 않았다. 목적지를 향해서 정처없이 걷거나 혹은 목적지를 찾아서 걸어다녔다. 골목 골목 굽이진 길도 걸었다. 날씨가 추웠던 터라 서로의 손을 잡으며 걸었지만, 가끔은 뺨을 부비고 키스를 하기도 했다. 

시를 읽다보니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난다. 함께 걸었던 기억이 구석진 밤이었던 것 같다. 구석진 밤이란 표현이 참 좋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