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0. 23. 22:04

저자 : 김소연 

출판사 : 마음산책
초판 1쇄 발행 : 2012년 11월 10일
전자책 발행 : 2013년 12월 30일

1. 대화의 즐거움, 침묵의 즐거움 
말을 하는 것도 혹은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그 나름대로 좋다. 아침 일찍 커피 마시며 떠드는 친구와의 농담 따먹기도 즐겁고, 혹은 같이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을 때의 침묵도 즐겁다. 말하는 것 혹은 말하지 않는 것, 그 양쪽은 내가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행하고 있을 때 충만함을 느낀다. 그것이 내 의도를 박살내거나 혹은 내 스케치를 완전히 벗어나 버릴 때는 그 애매함 때문에 사람과 있을 때 고통스럽다. 

사실 나도 그리 깊게 생각하고 말하는 타입은 아니다. 생각하는 족족 바로 입으로 언어가 나오곤 했다. 어릴 땐 특히나 이걸 조절하지 못해서, 많이 혼났다.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줬다. 말로 인해 사람들과 불화를 겪을 때면 며칠 정도 말이 없어졌다. 소심하지 않은 데도 소심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다시 말을 하고, 다시 상처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일들이 굉장히 적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내가 성장했다기보단 날 둘러싼 세상이 날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걸지도 모른다. 

내가 '언어'로 상처주는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언어'가 얼마나 섬세한 건지 알고 있다. 내 스스로가 섬세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섬세함으로 상처받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나는 섬세함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 댄다. 그렇게 몇 십년이 지나며 살아오고 있다. 

당신은 똑바로 걷고 있지만, 당신의 그림자는 허우적거려요. 당신의 그림자가 똑바로 걷고 있을 때에는 당신만이 허우적거려요. 당신은 태어나서 허우적거리지 않은 적이 없어요. 당신이 부정할지라도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우리 모두는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하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반듯하게 걸으며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에요. 

<시옷의 세계>는 참 이상한 책이다. 에세이인 것이 어딘지 모르게 시같다. 시인 것이 어딘지 모르게 에세이같다. 그 중간의 애매한 지점에 멈춰 서 있다. 애매함이 있어서 솔직히 좋다. 시는 웬지 쓸쓸하잖아. 에세이는 웬지 너무 달라붙었잖아. 그래서 중간에서 미묘하게 썸을 타는 것 같다. 시인과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어떤 중간 지점에서 조용히 멈춰서서 얘기하는 것 같다. 

<시옷의 세계>는 짧은 책이지만, 한 편으론 내가 수 백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훑고 지나가는 수많은 책들의 편린이 그가 쓴 글 하나하나에 묻어난다. 그 깊은 독서력에 감탄한다. 그래서 글 하나 문장 하나도 얄팍하지 않고 겹겹이 쌓아올린 베이컨 같다. 

2. '시옷의 세계' 3줄 평 
- 시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 
- 모시옷 같은, 돌멩이 같은, 아침비 같은 책 
- 삶이 너무 질척 거린다고 느껴질 때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책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