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0. 20. 23:43
메타세콰이어 길 
자전거는 몸무게보다
나이를 더 무거워 하고
덜컹거리는 것은 여전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양 옆에서 지나치는 메타세콰이어들, 아직 변성기 안 지난 애인들 같다. 양 옆에서 팔짱 껴오던 푸릇한 콧수염 같다

아직도 자전거는 덜컹거리며 뛰고 이제 막 돋아난 음모처럼 메타세콰이어 그림자들 진다

첫 키스는 소실점처럼 아득했다
그 다음부터는 나무마다 기대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 뛰었던 자전거, 지금도 여전히 자전거 바퀴는 두근두근 굴러간다.

길의 중간에서 양쪽이 다 소실점, 
아득하다
지나간 추억도 아득하고
살아갈 날도 아득하다

바람을 따라 휙휙 지나치던 애인들은 어느 소실점들로 몰려가 있을까
어느 길 옆을 아득히 앞질러 가 있거나 뒤처져 있을까 

파닥이는 이파리들 움켜쥐고 여전히 달리고 있는 메타세콰이어 길의 소실점을 향해 자전거 바퀴는 울렁울렁 달려간다 
- 박은석, <메타세콰이어 길>

첫 문단이 어딘지 마음에 닿는 시다. 

그러고 나니 이야기는 이 첫문단을 중심으로 어떤 소실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시 혼자 둥둥 떠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좋았다. 나도 소실점을 향해 울렁울렁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점이 마음에 닿는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