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0. 4. 23:46
취미기술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어
이미 죽은 것이니까

토끼의 심장을 손에 쥐고선 자두처럼 한입 베어 무는 싱거움
모르는 낱말 없는 사전을 들고
다 아는 듯 말하지도 못하는 자랑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타날 때까지
열렬하게 실패하는 꿈을 꾸고 싶어

목줄이 힘줄로 팽팽해지는 착각
연습은 이것으로 끝내 볼게

캐치볼을 끝낸 아이들이 잃어버린 공이 되어 
바람을 조금씩 빼앗기기 전에 

고백은 자꾸 쉬워지고
살면서 기억하게 된 거절들이 매표소에서 편도 기차표를 발권해 
어디론가 떠나가게 되면서 돌아오는 
내가 싫어 부메랑을 던지면 

밀렵을 두려워하는
사냥꾼의 눈동자를 볼 수 있어

그 속에 이름 없는 꽃밭을 일구고 
씨앗이 저지른 향기들을 무심코 사랑하게 되자
사서함 속에 넘쳐 나는 빈 엽서들
누가 몰래 쓰고 간 내 이름은 
사랑 받으면서 이미 죽어 버린 것

알비노를 앓는 토끼 두 눈에 그제야 맛있어 보이는 심장
먹음직스럽게 숨을 쉴 때마다
예뻐지고 위험해지는 나는 너의 악취미 

- 서윤후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中 -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