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0. 13. 23:34
옥상에서 본 거리
지나간다, 가장 행렬이

두 눈과 입이 뚫린 가면을 쓰고
평생을 버티는 사람들의 연회장을 빠져나와
지금 난 옥상에 있다
허드슨 강가 옛날 도축장이 있던 자리 

난 물과 양분이 필요하고 가끔 사람의 열도 쐬어야 한다

상관없어
우리는 사랑 때문에 자살하는 종족이 아니잖니

옥상 모퉁이에 움직이는 물체가 있었다
그들은 비벼대며 서로를 물어뜯다가
환풍기 옆 난간 쪽으로 다리를 옮기는 나를 보고도 흩어지지 않았다 

저 아래 광장에는 비보이 날지 않는
기묘한 비둘기
거리의 바보, 화가, 연주자
거리의 여인
거리의 거지
저들이 찾는 것도 질 좋은 식료와 가죽일까 
넌 이제 거리를 헤매지 않겠지 수많은 의상과 가면이 준비되었을 테지

누가 고함치고 누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또 누가 노래하나
포획과 은폐, 자유에 관하여
이 거대한 푸줏간을 어슬렁거리는 나는 게으른 종업원
나의 고깃덩어리를 관리한다 

넌 이제 연회장에서 나와 꽃과 리본으로 장식한 차를 타는구나
잘 가 
넌 이제 구속을 얻었구나
밤새 신부와 그 들러리들과 춤을 출 테지
이 동네 최고의 미녀와 돈 많은 장인을 가졌다고 
그것이 능력이라고 능력이 곧 자유라고 주례사가 한 말이 뻥이 아니라면 
1.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中, 문학과지성사, 2014

가까이서 보면 지옥, 멀리서 보면 천국이라던데. 

이 시에서 화자는 멀리 서있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가까이 있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