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1. 25. 23:55
실존하는 기쁨
그는 자꾸 내 연인처럼 군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와 팔짱을 끼고 머리를 맞대고

가만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아는 사람을 보았지만 못 본 체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확신은 없다

아파트 단지의 밤

가정의 빛들이 켜지고 그것이 물가에 비치고 있다 나무의 그림자가 검게 타들어 가는데

이제 시간이 늦었다고 그가 말한다
그는 자꾸 내 연인 같다 다음에 꼭 또 보자고 한다

나는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고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 황인찬, <희지의 세계> 中

산책한답시고 동네 밤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걷고 있는 건 지금 저 편에 있는 내 육체이고, 실제 생각하고 있는 나는 그 위에 둥둥 떠서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그 둥둥 떠 있던 내가 걷고 있는 내 옆에 다가와서 말해준다. 

너 괜찮니 

사회는 정신 집중을 요구하지만, 실상 내가 가장 원하는 건 집중을 완전히 풀어 헤친 상태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멍 때리는 상태. 걸을 때 그런 상태가 자주 찾아오는 것 같다. 그 때 둥둥 떠 다니던 내가 말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웬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목소리는 울렁이는 물결같다 귀를 갖다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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