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2. 16. 23:55
활어 전문
우럭 몇 마리 아래턱이 붉다. 해져 너덜거리는 주걱턱이 뻐끔거린다. 뜬눈으로도 그것이 벽인 줄 모른다. 뱀장어 검은 몸들 뒤엉킨다. 미끄러지며 휘감기는 몸들 사이로 잘린 꼬리 하나 떠올랐다 사라진다.
우리는 땀을 흘리며 뻐끔뻐끔 장어탕을 먹는다. 

유리관 옆에는
망치 하나 칼 한 자루
햇살에 흰 이를 빛내며 웃는다
도마 위에 파리 두엇 앉아 있다

명동 거리를 흘러가는 정어리떼 
뒤엉키고 부딪치며 뻐끔거린다
거대한 수족관 속
미끈한 활어들이 헐떡이며
그것을 구경하고 있다

24시 피트니스 센터 전면 유리창을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고 

사방 유리벽에 이마를 찧으며 우리는 
- 허은실, <나는 잠깐 설웁다> 中 

두 가지 이미지가 겹친다. 첫번째는 수산시장에서 활어를 잡는 상인의 손길. 물기. 혹은 비릿한 어떤 향취라던가 조금은 더럽다고 느껴지는 어떤 미묘한 느낌. 두번째는 도시를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요즘 날씨가 춥다보니,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은 겨울 풍경으로 그려진다. 

사람의 모습이 어떤 물결 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수족관에 갖혀 있는 활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어떤 모습과 함께 장어탕에서 죽어서 먹혀지는 물고기의 모습을 대조하고 나니, 이 시가 참 그로테스크하게 읽히기도 한다. 

난 사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살면서 보통 어떤 이미지를 갖고 살고 있는 걸까. 어릴 땐 이런 이미지라는 게 참 단순하고, 명쾌하고, 확실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정말 다양한 이미지가 겹친다. 그게 그 사람들을 정의하는 이미지라고 할 지 못할지라도 어디선가 다른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이미지를 겹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를 읽을 때는 그런 느낌이 명쾌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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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