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1. 28. 23:52
마흔
니코틴 때문이 아닐지 몰라
내가 재떨이를 헤집는 이유

뜨겁던 몸들
퀴퀴하다

생살에 비벼 끄던
간절한 말들

나는 마지막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다

잎술까지 닿는 꽁초의 

뜨거움 
- 허은실, <나는 잠깐 설웁다> 中


어떤 명확한 이미지가 잡히는 것 같다. 

이런 이미지가 있는 시가 좋다. 

감각이 푹 담가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다.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1. 27. 23:47
라오스 여행기-1 
저녁 7시 10분 비행기였다. 전날 부랴부랴 가방, 수영복, 아쿠아슈즈까지 새로 장만해서 짐꾸리기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뒀다. 이것저것 걱정이 될만한 요소를 없애려고 새벽까지 블로그들을 뒤적거렸던 탓에 아침엔 늦게 일어날 요량이었다. 

아침 8시부터 내 방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그날 따라 부산에서 서울로 볼 일 보러 온 작은아버지와 친척형이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늦잠을 자려는 계획이 파토났다. 애초에 아직 여행 전 블로그 작성도 못해뒀던 터라 여행 5일치 포스팅이나 미리 해두기로 마음먹었다. 멍한 상태로 글을 썼다. 그제 읽어뒀던 책에 대한 내용과 몇 가지 잡상에 대해서 대충 글을 쓰고 나니 시간은 벌써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공항에서 J와 만나 환전을 마치고 겨울 외투를 맡긴 후에 서둘러 수속을 처리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남아서 대충 1시간 반은 빈둥댈 여유가 생겼다. 비즈니스 라운지를 쓸 수 있는 P.P카드가 있던 터라 우리는 라운지로 가서 저녁을 떼우기로 했다. 오랫동안 술에 굶었던 건지 코냑, 위스키, 와인까지 종류별로 많은 술을 마셨다. 기분도 좋고 여행도 순조로운 것 같아서 적당히 여유를 챙겨 40분 전에 게이트로 이동했다. 

원래 게이트는 102번이었다. 내 티켓에도 그렇게 써있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완전히 엉뚱한 항공편이 있는 것 아닌가? 당황하여 직원에게 물어보니 118번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당장 탑승완료 시간이 10분을 남긴 상황에서 마음이 괜히 급해졌다. 

그래도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야말로 여행의 묘미아닐까, 라는 생각에 "재밌다,그치?"라며 J에게 물었다. J는 열심히 뛰어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18번 게이트에 도착하니 우리같은 사람들이 몇 있었다. 굳이 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줄도 서 있었다. 102번 게이트와 118번 게이트 사이 거리가 꽤 멀었던 터라 이미 탑승 완료시각을 5분 정도 지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내 앞에선 승무원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도 있었다. 

" 아니, 이걸 미리 말해줬어야지, 이게 뭐 하는 거에요! "
" 저희가 중앙 방송으로 알려드리긴 했습니다. 개인으로 하나하나 연락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

승무원의 표정은 난처하다기보단 이미 불평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겪다보니 귀찮다는 표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불평하는 사람은 그렇게 짜증을 내서라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은데 승무원은 교묘하게 그 말을 피하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그것이 어떤 보상체계와 연결될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심지어 늦게 도착하다보니 짐칸엔 짐을 놓을 공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앞에서 불평하던 여자가 다시 짜증을 내며 멈춰섰다. 여기서 그녀를 상대하는 승무원은 열심히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변명을 했다. 

길이 막혀서 좀 짜증이 난 터라 난 더 들어주지 못하고 비켜달라고 했다. 짜증난 여자는 차마 그 짜증의 여파를 내게까지 넘겨주지 못하고 못마땅한듯 몸을 비켜섰다. 

비행기 안은 좁았다. 우린 차곡차곡 자리에 쌓였다. 6시간 비행시간동안 몸은 잔뜩 낑기고 불편해서 뒤척거리고 싶은데, 뒤척일만한 여유공간이 거의 없었다. 

솔직히 6시간 정도 가는 거면 정말 짧은 거리라 뭘 먹거나 할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그 좁아터진 자리에서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고 있었다. 맥주 마시는 사람도 꽤 많았고, 과자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치맥세트도 있었다. 나와 J는 설마 이걸 먹으면서 주변에 민폐끼치는 사람은 없겠거니했는데, 비행한지 3시간쯤 지나자 두 자리 앞에서 그걸 시켜놓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세상에, 3시간만 지나면 라오스에서 현지 음식에 맥주를 마실 수 있을텐데 그샐 못 참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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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미분류2017. 11. 26. 23:14

저자 : 엘런 L. 워커 / 옮긴이 : 공보경
출판사 : (주)도서출판 푸른숲
초판 1쇄 발행 : 2016년 5월 20일 

1.  아이 없는 삶에 대한 이해 
나도 아직 아이를 갖지 않았다. 실제로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까마득하게 먼 이야기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 중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가졌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사상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 중에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아이를 갖지 않았다거나, 혹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소수자로서 남아 있다. 

어릴 땐 나이들어서 아이를 갖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때 내가 했던 고민은 아이를 갖냐 안 갖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는 몇 명을 나아야 하는 걸까 라는 문제였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무조건 2명 혹은 3명이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 친구들은 대부분 형제 자매가 1명 혹은 2명 정도 있었으니, 내 대답은 세상의 평균을 향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생이 되면서, 그리고 직장인이 되면서 생각은 극단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돈이라는 개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 삶을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 그런 문제들은 모두 어른들에게 적당히 맡겨둔 상황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기 이전에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낼 것인지, 생활비라는 건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었기 떄문에 그런 걸 배운 건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돈이 보이기 시작하니,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접근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도 바로 '돈'이다. 재정적인 문제는 삶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친다. 퇴근 이후 저녁의 삶이라던가, 주말 생활, 여행, 취미, 자기 관리, 성취, 노후 대비 등등. 모든 사람이 다 공평하게 같은 돈을 아이를 위해서 쓴다면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아이를 셋을 갖고, 어떤 사람은 아이를 하나를 가지며, 어떤 이는 아이를 갖지 않는다. 그들이 맞이하는 경제적인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나 이런 점이 이 책 곳곳에서 언급되어 있다. 

사십 대 초반인 조엘은 첫 번째 결혼에서 두 아들을 두었고 얼마 전 새로 결혼해서 두 살배기 아들을 얻었다.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세 아들을 갖게 되어 기쁘고 아들들과 함께 있으면 무척 즐겁다고 했다. 다만 전처와 낳은 두 아들의 양육비로 매달 1500달러를 보내야 해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없는 나로서는 매달 그 많은 돈을 쏟아 붓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조엘은 예순 살이 될 때까지, 즉 막내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돈을 지출해야 할 터다. 미 농무부의 조사에 따르면, 연간 소득이 7만 달러 이상인 가정에서 자녀를 열일곱 살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26만 520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대학교 등록금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포함될 경우 4년간의 학비에 해당하는 15만 달러가 추가된다. 

이런 예시는 미국의 예시라 더더욱 소름끼친다. 한국의 실상은 더 끔찍하다. 실제 아이를 기르고 있는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 명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내가 매달 저축하기 위해서 모으고 있는 금액을 상회한다. 아이의 수가 두 명이 되는 순간 저축은 커녕 빚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교육비가 소비되는 이유는 주변 사람들과 꾸준히 비교하는 삶이 보편화되어 있고, 또한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실생활을 보내는 곳이 그런 사교육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아이 없는 사람들이 누리는 이점은 '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를 기르느라 놓치게 되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돈을 이용해서 그 사람들은 취미 생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한다. 심지어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더 건강한 음식을 먹고 더 많은 시간을 운동하는데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된다. 아이가 없을 경우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노후 문제 역시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이 언급된다. 아이가 없는 사람일 수록 사회 구조망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한 자기 자신을 챙길 수 있는 재정적인 안정성도 확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 없는 이들이 쓸쓸한 노후를 보낼 것이라 상상하지만, 실상 그런 노후를 보내는 건 다 큰 자식을 집 밖으로 보낸 부모의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 이 책이 지적하는 바이다. 

물론 이 책이 주구장창 아이 없는 삶에 대해 찬양일색으로 끝내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없을 시 겪게 되는 수많은 정신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어차피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이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문제들 조차도, '그게 정말 문제가 맞을까?'라고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이다. 

책 전체에 걸쳐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친구들과 깊게 논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서 토론 같은 자리에서 함께 얘기해보면 특히 재밌을 것 같다. 본디 이런 문제엔 정답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 그것도 즐거울 것 같다. 

2. '아이 없는 완전한 삶' 3줄 평 
- 아이 없이 사라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은 점이 좋다. 인터뷰도 무척 풍부하다. 
- 다만, 삶의 타임라인에 맞춰 체계적으로 장/단점이 구분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인터뷰 형식에선 어려운 얘기겠지. 
- 아이 없는 삶이 개개인에겐 행복이지만, 사회 전체로는 공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책의 목적 자체가 그런 부분은 배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