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7. 19. 23:31

저자 : 스미노 요루 / 옮긴이 : 양윤옥 
출판사 : 이즈플러스 (판매 : (주)소미미디어)
초판 1쇄 발행 : 2017년 4월 1일

1. 제목과 달리 상큼한 청춘 로맨스 소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재밌는 로맨스 소설이 읽고 싶었다. 어떤 책이 있을까 전자서점을 뒤지다보니 제목이 인상깊은 책이 눈에 띄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니. 책을 읽기 전에도,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정말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제목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납득했다.

작가 자신도 어떤 글을 써야할 지 고민하기보다는 책 제목을 먼저 선정한 후에 이 제목에 맞는 이야기들을 지었다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엔 책 내용이 제목을 따라가지 못하고 부실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생각보다도 훨씬 깔끔하게 이야기가 구성되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췌장병(아마도 췌장암?)이 걸린 활달한 성격의 소녀와 친구 없이 소설에만 관심을 보이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년이 만나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룬 책이다. 보통의 로맨스 소설처럼 끈적끈적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기보단, 썸 타듯 서로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주고 받는 풋풋한 사랑을 다뤘다. 본디 활달한 성격이던 소녀는 시한부 삶 속에서, 내성적이면서도 남들보단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소년을 만나 서로에게 없는 점을 보며 조금씩 끌리며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뻔할 것 같은 이 소설도 나름의 반전 장치가 훌륭하다. 또한 소년과 소녀가 나누는 대화라던가, 소녀가 남기는 유언(공병일기)이라던가 소년의 독백 부분도 감성이 풍부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블로그나 서점 홈페이지 댓글을 읽어보면,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사람도 꽤 많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게 그런 부분 때문이었는데 이상하게 난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다. 학창시절이 끝난 이후로 감성이 메말라 버린 것인지 아니면 이런 류의 글을 읽으며 많이 눈물을 흘려본 탓인지 원인을 모르겠다. 사실 우는 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 나도 가슴 한 쪽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으니 내 나름의 방식으로 운 거라 해도 되겠지? 

2.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3줄 평 
- 제목은 참 기똥차게 지은 소설. 제목과 상반되게 내용은 참 상큼했다. 
- 청춘 로맨스 소설로 이 정도 내용이면 알차다 싶다. 
-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7. 18. 23:48
명상록 중 - 나이듦과 흠집에 관하여
남은 여생을 계속 축소시키면서 하루하루는 생명의 심지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수명이 연장된다 해도, 사리를 이해하는 능력이나 신에 관한 지식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색 능력을 그의 정신이 계속 지니고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령에 접어든다 해도 호흡, 소화 능력, 감각, 충동 등등에는 별로 이상이 따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고 의무의 요청을 정확히 평가하고 야기되는 온갖 문제를 조화시키고, 자신의 지상에서의 생활을 종결짓는 시기가 왔는가를 판단하고, 그 밖에도 연마된 지능의 발휘를 요하는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이미 쇠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 까닭은 매순간이 우리를 죽음으로 가까이 데려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죽기 전부터 인식 능력과 이해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라고 명상록에 적혀 있기는 하다만, 이와 상반된 연구결과도 어느 정도 나오고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보통 두 종류라고 한다. 어떤 정보를 인식하여 그 정보를 저장하고 암기하는 능력이 하나이고, 어떤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또 하나이다. 전자의 경우 10대~20대가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겠으나, 후자의 경우엔 40~50대가 되어서도 젊을 때보다 오히려 좋은 판단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도 나이든 40~60세의 사람들이 CEO를 맡고, 대통령이나 총리를 맡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전통은 인류 사회에서 이미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것인데, 40~60대의 사람들이 리더를 맡은 무리보다, 20~30대의 사람들이 리더를 맡은 무리가 더 성공했었다면 사회는 그런 전통이 이어지도록 발전하지 않았을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20대~30대에 명성을 떨치고 성공한 리더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또 한 가지 말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과정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일 속에는 은총과 매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빵을 오븐에다 구울 때 터진 곳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흠집은 구울 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는 것이며 식욕을 돋군다. 또한 무화과도 잘 익으면 갈라져서 벌어진다. 올리브도 막 떨어질 무렵이 되면 썩기 직전에 이르는데, 바로 그것이 올리브 열매에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부가한다. 또한 고개 숙인 수수이삭, 사자가 찡그릴 때 주름 잡히는 피부, 멧돼지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입거품, 그 외에도 이와 유사한 많은 것들은 만일 그 자체를 분리해서 바라본다면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또 다른 과정으로서 그 자연의 매력과 미에 그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때가 더 좋은 것인가, 나이 들었을 때가 더 좋은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젊은 시기를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고 하지만, 나이가 적당히 든 시기, 꽤나 나이가 든 시기, 백발이 청청하고 주름이 가득해서 어딜 가도 나이듦이 명확해진 시기 그 모든 시기 역시도 놓칠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이며, 어찌 젊은 시절만이 인생의 대부분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나이엔 나이에 걸맞는 행동과 모양새가 있고, 그에 맞는 고민들이 있다. 내가 더 어렸더라면, 하며 후회하고 그 순간을 놓쳐버린다면 결국엔 그 후회한 시간들이 삶을 채우며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마저 부질없다. 어차피 이런 걸 말한다 한들 후회는 일순 찾아오는 법이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후회한 걸 잊어버리게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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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시, 에세이2017. 7. 17. 23:56

저자 : 더프 백더프 / 옮긴이 : 강수정 
출판사 : 미메시스 
초판 1쇄 발행 : 2015년 12월 30일 

1. 소수자이길 원치 않는다. 
고등학생 때 그리고 대학생 때 내가 항상 꿈꿨던 건 내가 남들보다 뭔가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어떤 일을 해내고, 세상에 꽤 쓸모있는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죽은 후 100년, 혹은 200년이 지난 후에도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어릴 적에 이런 질문을 해보지 않나? 돈, 명예, 권력 3가지 중에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어릴 적 나는 이 질문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명예가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난 남들과 다른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하며, 튀려고 하지도 않았다. 항상 남의 눈치를 봤다. 앞에서 나서서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든 일을 애써 하려고도 안했고, 남들이 하려하지 않는 독특한 진로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일상은 꽤나 평범했다. 남들이 적당히 좇고 있는 일을 적당히 잘하려 했다. 친구들이 하지 않는 일은 나 혼자 찾아서 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친구들이 모두 원하는 일은 나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은 항상 해내려고 애썼다. 

그건 일종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수자가 되는 두려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내가 느끼게 될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나이가 들어 내가 어릴 적에 꿈꿨던 것처럼 위대한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도 조금은 두려웠으나, 나이가 들어 남들은 모두 하고 있을 어떤 일을 나 홀로 하지 못하게 될 때 느끼게 될 고립감은 지독히도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공감받지 못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사실 나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감히 그걸 공감해보겠다고 얘기할 자격이 없다. 이 책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머라는 친구가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런 친구가 학교에 적어도 한 명 쯤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딘가 모자라고, 유머감각은 있고,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놀려 먹을 때에는 적당히 함께했다가도, 필요가 없어질 땐 저 멀리 버려지는 존재.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있던 난 그 친구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한국에는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제프리 다머는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몰고왔던 악명높은 연쇄 살인범이었다. 그는 '밀워키의 식인종'으로 불렸는데, 17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상대로 자위행위를 펼쳤으며, 일부 시체는 직접 먹었다고 한다. 

이런 끔찍한 범죄를 벌인 그를 두고 학창 시절 함께 친구(?)로 지냈던 이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다머는 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언뜻 보았을 때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그토록 끔찍한 환경까지 갈 수 있을지에 대해 놀랄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전에 읽었던 케빈 더튼의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라는 책에 따르면 제프리 다머는 십중팔구 사이코패스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사이코패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는 학술적으로 매우 다를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해 사이코패스라는 건 '공감능력이 결여되었다는 점'과 '슬픔이나 공포를 느끼는 감정이 결여'되었다는 것 정도의 차이다. 케빈 더튼에 따르면 우리 일상 사회에도 사이코패스로 태어났지만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사이코패스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적에 가정 환경이 불행하거나 불화가 심할 경우, 자신의 성향을 사회와 잘 조율하지 못한 결과 그것이 치명적인 사고로 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이런 이들을 두고 '사이코패스 범죄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프리 다머는 아마 이런 유형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제프리 다머를 꽤나 깊이 있는 단계까지 다루고자 열심히 노력한 책이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의 입장에서 이 정도까지 깊게 파고들어 연구하고 만화로 그려냈다는 건 상당한 관찰력이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마음이 씁쓸하다. 제프리 다머가 처하게 된 상황이 그러하고, 그가 처했던 절대적 소수로서의 위치가 그러하다. 제프리 다머는 성소수자였고, 왕따(?)였으며, 사이코패스였고, 가정 불화의 피해자였다. 사회에서 절대적 소수를 차지하는 약자였다. 

이 만화에서도 그 점을 지적한다. 

'빌어먹을 어른들은 그때 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

2. '내 친구 다머' 3줄 평 
-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범의 학창 시절을 추적하여, 당시 친구의 시야로 그를 관찰하는 책 
- 그로테스크한 그림체 때문에 다소 역겹고 불편하긴하지만, 주제의식에는 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성소수자, 왕따, 사이코패스, 가정불화나 폭력의 피해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이 실은, 모두의 안전망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도 들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