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7. 21. 23:39
불안감
내가 8살 때를 회상해보면 항상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아침 7시, 학교 갈 준비를 할 때도 내 마음 속을 지배하는 감정은 불안이었다. ‘책은 다 챙겼나?’ ‘학교 가서 화장실 가지 않아야 할 텐데.’ ‘날씨는 괜찮은가?’ ‘친구A가 날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오늘 축구에선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느낌은 폭풍우처럼 밀려든다.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된다고 해서 이런 느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모든 시간엔 그 시간에 어울리는 불안이 있다. 어두운 저녁엔 보통 이런 불안함이 두려움으로 변색된다. 어두운 동네 밤 거리를 걷고 있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가지를 보면서 귀신을 떠올렸고, 쓰레기통 뒷편에서 괴물 같은 것이 뛰쳐나올까봐 두려웠다. 어릴 때 귀신을 상상하는 건 워낙 당연한 거라 나이가 들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감정의 근원이 불안함이었다는 걸 요즘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행복한 변화는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나,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건강에 대한 걱정은 있지만, 이런 걱정들은 불안의 감정과는 다르다. 불안이라고 하는 건 외피 안 쪽에 위치한 내피를 흐르는 혈관 하나하나에 차가운 기운을 불어넣는 느낌이다. 불안이라고 하는 건 단지 불안하다고 여기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된 빈자리는 또다른 문제로 채워진다. 불안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어떤 문제거리를 찾아서 의식의 표피로 끌어당기는 느낌에 가깝다. 

난 왜 그리도 불안감을 느꼈던 걸까. 내가 그닥 불행한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는데. 부모님 모두가 다 잘 계시고, 내 나름의 판단으로 보기엔 꽤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평일엔 아버지 얼굴을 보기 힘들만큼 바쁘게 일하시기 때문에, 주부셨던 어머니만 보고 자랐지만, 그 당시엔 대부분 가정들이 비슷비슷했다. 어떤 회사를 다니던 간에 회사원이라면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절이었다. 부모님께 어떤 건강 상의 문제가 있었냐 하면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 요즘에야 어머니께서 항상 아프다는 말을 연발하시고, 아버지도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셨지만, 당시 두 분은 어디 나가도 건강하다는 소리를 들으실만 했다. 그럼 내가 아팠나? 아주 어릴 적에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고, 자주 감기로 고생해서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다니곤 했지만, 그것이 나를 다른 친구들과 분리시킬만한 여지를 제공한 건 또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어릴 적엔 불안함을 끼고 살았을까?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불안한 감정이 사그라드는 경험을 해보았을까? 만일 어릴 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나로서는 가끔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걸 바란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딱히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건강 상 내가 힘들었던 것도 아니지만, 난 항상 불안감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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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