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7. 26. 23:19
여름에 입는 옷에 관하여 
요즘 내가 입는 옷은 매우 한정적이다. 상의로는 총 9종이고, 하의로는 딱 3종 밖에 되지 않는다. 상의 9종 중 5종은 셔츠의 형태를 띄고 있고, 3종은 폴로티, 1종은 7부 반팔이다. 하의 3종은 모두 반바지이다. 

매일 다른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매일 다른 상의를 입는다. 이틀 연속으로 다른 종류의 옷을 입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건 주말을 끼면 달라진다. 평일 5일 간 만나는 사람들은 연속적으로 나를 만나게 되지만, 주말 이틀 간 만나는 사람들은 평일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금요일과 토요일의 옷이 같아도 큰 상관이 없고, 마찬가지로 일요일과 월요일의 옷이 같아도 큰 상관이 없다. 

어차피 내게 있어 옷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대부분의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정작 맨 처음 옷을 구입할 때는 나 자신의 미적 가치와 나 자신을 위한 기능으로서 옷을 구입하지만, 옷을 입게 되는 평소엔 그 옷이 타인을 통해서 가치를 증명한다는 점이 우습다. 물론 어쩌다 내가 거울을 볼 때가 있고, 이 때 난 타자의 시선으로 옷을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이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어떻게 여름인데 이틀 연속으로 같은 옷을 입을 수 있죠? 빨래도 안해요?’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내 땀이 젖는 부분은 내 속옷과 내의 부분이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상의 안에는 항상 내의를 걸친다. 그 덕분에 땀이 닿는 대부분의 위치는 내의이다. 매일 같이 새로운 내의와 속옷을 입고 있으니 그래도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위생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깥에 입는 옷도 가끔 내가 냄새를 맡았을 때 꿉꿉하다고 느끼거나 얼룩이나 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 바로 빨래를 한다. 이 때문에 9종의 옷은 보통 이르면 1주일에 한 번, 늦으면 2달의 한 번 빨래를 하기도 한다. 막상 이렇게 써놓고 나니, 어떤 사람들은 이걸 참 더럽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여러 벌의 여름 옷을 샀었다. 매 여름이 되면 못해도 5종이 넘는 여름 옷을 장만했던 것 같은데 항상 남아 있는 건 얼마 안된다. 내가 마음 먹고 옷을 버린 경우도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막상 한 계절을 건너서 다른 계절로 옮기고 나면 그 옷들이 모두 어딘가로 사라지곤 한다. 

작년엔 우연히 가을에 옷 정리를 하다가 5년 전에 잃어버린 정장 바지를 찾았다. 꽤나 아끼는 바지였기 때문에 잃어버렸을 당시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옷장을 다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던 녀석이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러던 걸 너무나 어이없이 찾았다. 옷장 한 쪽에 고이 접혀 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 내 바지를 가져가서 실컷 입고 5년이 지나니까 ‘아, 이젠 충분히 입었어. 주인에게 돌려줘도 되겠구만!’이라고 마음 먹은 것처럼. (만일 이 상상이 진실이라면, 그렇게 마음 먹으신 그 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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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