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7. 29. 21:00
손금
항상 누군가가 내 손금을 보겠다고 내 손을 봐줄 때가 있다. 왼손, 오른손? 당연히 오른 손 아니야. 왼손은 태어날 때 갖고 있는 것이고 오른손은 현재의 운세니까. 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럼 오른손을 펴서 보여준다. 누군가는 몇 가지를 살펴본다. M자가 그려져 있는지. 부자손금이라 불리는 삼지창이 그려져 있는지. 사업선이나 결혼선은 어떤지. 재물선이 있는지. 있다면 그 길이는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그게 다야?'라고 물어보면, 그게 다라고 한다. 막상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건 생명선이다. 왼손과 비교해서 그 무엇보다도 진하고 강렬한 손금을 말해보라고 해도 단연코 생명선이다. 생명선이 참 진하고 깔끔하면서도 정말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내 생명선은 손바닥을 넘어서서 손등에 까지 이어질 정도로 길다. 레이 커즈와일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첫 배를 타게 되는게 혹시나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가소로운 욕망도 떠올려본다. 

사실 손금을 잘 볼줄 몰라도 다른 사람의 손금을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그 손금이 자잘자잘한 주름으로 가득차 있는지. 혹여나 손바닥에 살집이 잘 잡혀 있는지. 각각의 손금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사실 난 그 사람에게 어떤 좋은 정보를 알려주지 못할 지언정, 적어도 그 전까지 내가 그 사람을 관찰했던 정보가 있기 때문에 역으로 나는 사람의 성격과 행동들이 이런 식으로 손금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론해볼 수 있다. (이걸 혼자 추론하는 거 까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남들에게 사실인양 말하는 순간부터 사기꾼이 되는 거겠지만.) 

요즘엔 핸드폰으로 내 손바닥 사진을 찍어서 손금을 보는 어플도 있다. 핸드폰으로 정확한 위치를 잡아서 사진을 찍으면, 해당 사진에서 손금의 위치를 살펴보면서 손금을 보는 원리이다. 개발자 입장에선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리즘을 맞추는게 어려웠을테니, 몇 가지 강렬한 것들만 잘 조합해서 결과를 띄워주는 거라 생각한다. 이런 어플을 하나 다운 받아놓고 친구들과 함께 다같이 손금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그게 결코 과학이라 할 수 없어도, 그것을 신뢰할 그 어떤 데이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런 걸 믿고 즐거워하고 아쉬워한다. 이미 고정되어 버린 삶에서 어떤 틈새 같은 것을 잡고 싶어하는 희망이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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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