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7. 18. 23:48
명상록 중 - 나이듦과 흠집에 관하여
남은 여생을 계속 축소시키면서 하루하루는 생명의 심지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수명이 연장된다 해도, 사리를 이해하는 능력이나 신에 관한 지식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색 능력을 그의 정신이 계속 지니고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령에 접어든다 해도 호흡, 소화 능력, 감각, 충동 등등에는 별로 이상이 따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고 의무의 요청을 정확히 평가하고 야기되는 온갖 문제를 조화시키고, 자신의 지상에서의 생활을 종결짓는 시기가 왔는가를 판단하고, 그 밖에도 연마된 지능의 발휘를 요하는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이미 쇠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 까닭은 매순간이 우리를 죽음으로 가까이 데려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죽기 전부터 인식 능력과 이해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라고 명상록에 적혀 있기는 하다만, 이와 상반된 연구결과도 어느 정도 나오고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보통 두 종류라고 한다. 어떤 정보를 인식하여 그 정보를 저장하고 암기하는 능력이 하나이고, 어떤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또 하나이다. 전자의 경우 10대~20대가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겠으나, 후자의 경우엔 40~50대가 되어서도 젊을 때보다 오히려 좋은 판단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도 나이든 40~60세의 사람들이 CEO를 맡고, 대통령이나 총리를 맡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전통은 인류 사회에서 이미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것인데, 40~60대의 사람들이 리더를 맡은 무리보다, 20~30대의 사람들이 리더를 맡은 무리가 더 성공했었다면 사회는 그런 전통이 이어지도록 발전하지 않았을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20대~30대에 명성을 떨치고 성공한 리더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또 한 가지 말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과정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일 속에는 은총과 매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빵을 오븐에다 구울 때 터진 곳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흠집은 구울 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는 것이며 식욕을 돋군다. 또한 무화과도 잘 익으면 갈라져서 벌어진다. 올리브도 막 떨어질 무렵이 되면 썩기 직전에 이르는데, 바로 그것이 올리브 열매에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부가한다. 또한 고개 숙인 수수이삭, 사자가 찡그릴 때 주름 잡히는 피부, 멧돼지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입거품, 그 외에도 이와 유사한 많은 것들은 만일 그 자체를 분리해서 바라본다면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또 다른 과정으로서 그 자연의 매력과 미에 그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때가 더 좋은 것인가, 나이 들었을 때가 더 좋은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젊은 시기를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고 하지만, 나이가 적당히 든 시기, 꽤나 나이가 든 시기, 백발이 청청하고 주름이 가득해서 어딜 가도 나이듦이 명확해진 시기 그 모든 시기 역시도 놓칠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이며, 어찌 젊은 시절만이 인생의 대부분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나이엔 나이에 걸맞는 행동과 모양새가 있고, 그에 맞는 고민들이 있다. 내가 더 어렸더라면, 하며 후회하고 그 순간을 놓쳐버린다면 결국엔 그 후회한 시간들이 삶을 채우며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마저 부질없다. 어차피 이런 걸 말한다 한들 후회는 일순 찾아오는 법이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후회한 걸 잊어버리게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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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