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7. 7. 23:26
수다스러울 수 있을까
술자리를 갖거나, 밥을 같이 먹을 때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을 관찰해본 경험이 있으신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대화패턴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애시당초 얘기하는 걸 포기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평소에 말이 많은 사람인데도 그 자리에서 얘기하기 싫어 말을 안하는 사람도 있고, 원래 말 하는 걸 즐겨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항상 대화 주제가 정해져 있다. 시험, 공부, 여행, 육아, 주식과 부동산, 게임 등등. 항상 같은 주제만 건드리며 얘기하면 지루하기 때문에 평소 얘기하는 3~4가지 주제를 잡고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아예 가볍게 웃고 떠드는 걸 목적으로 삼은 사람도 있다. 일본에선 이런 사람을 두고 '텐션이 업됐다.'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주로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맞춰서 다른 사람들도 함께 텐션을 올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적응하기가 어렵다. 평소처럼 진지한 대화라던가 부드러운 대화 템포를 유지하려고 하면 혼자서 시건방 떠는 것 같아서, 괜히 들뜬 목소리를 내야 괜찮아진다. 자연히 술도 많이 마신다. 

나도 가끔은 이런 사람이 되곤 한다. 격 없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을 땐 이런 행동을 취하기 쉽다. 괜히 농담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싶어지고, 손짓도 더 커진다. 반대로 전혀 반대의 사람이 될 때도 있다. 애시당초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데 술자리에 끌려와서 술을 마실 때 특히 그렇다. 분위기를 뭉개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경험은 몇 번 해봤다. 그런 경험을 해보고 나니, 도저히 기분이 나지 않을 때엔 온 힘을 다해서 연기를 해야 한다. 즐거운 것처럼. 

가끔 엄청 말을 잘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물론 앞서 말한 텐션 업이 된 사람 중 말이다. 나도 텐션 업 되지 않은 상태에선 계속 말할 자신이 있다. 텐션 업 상태에서 말을 잘하려면 끊임없이 대화의 화제를 취사 선택해야 한다. 게다가 자신이 고른 대화 소재가 분위기를 박살내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난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마구잡이로 대화를 지휘한다. 

술자리나 밥먹는 자리에선 보통 눈 앞에 있는 음식이 첫 번째 대화 소재가 되는 것 같다. 이런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먹어야 한다느니, 자신이 다른 장소에서 먹어봤던 음식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메뉴를 고를 때도 유쾌하게 입담을 털 수 있다. 그렇게 가장 쉬운 대화 소재를 요리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대화와 대화 사이에 침묵이 3초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침묵이 음식을 오물 거리는 시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실 상 침묵은 없다.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말 잘하는 사람 옆에 앉으면 묘하게 권력이 느껴진다. 한 테이블에 6명 정도 앉아 있으면 보통 6명이 다 같이 한 대화에 집중하기 쉬워진다. 7명을 넘기는 순간 갑자기 3명, 4명이 짝을 이루지만. 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 한 명의 목소리에 집중할 때, 거기엔 권력이 있다. 대화의 주도권은 보통 2명에서 3명 정도에게 집중된다. 나머지 3~4명은 그들의 이야기를 거들 뿐, 주도적으로 대화 주제를 결정할 역량이 없다. 아니, 애초에 함부로 주제를 꺼냈다간 분위기가 폭삭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텐션이 업된 대화엔 그만큼 거품이 가라앉을 긴장감이 흐른다. 

물론 긴장감이 흐른다는 건 관찰자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이겠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입장에선 이런 술자리가 끝나는 게 참 아쉬울 게다. 어떤 긴장감 같은 게 있었다는 것마저도 잊고 있었을 수 있다. 그건 꽤 괜찮은 기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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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