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7. 28. 23:54

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옮긴이 : 윤정임
출판사 : (주)미르북컴퍼니
초판 1쇄 발행 : 2014년 5월 12일 (원본 발행일 : 1931년) 

1. '야간비행'의 줄거리 
1900년대 초, 다른 운송 수단과 속도로 경쟁해야 했던 우편 항공사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냉혈해보이기까지한 냉철한 판단력으로 항공사를 운영하는 리비에르는 우편 항공사의 생존을 위해 야간비행을 시행하도록 지시한다. 그는 자신의 부하직원들이 어떤 사유를 하기보단 행동하게 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강렬한 삶으로 밀어붙이는 역할을 한다. 

로비노는 조종사와 정비원들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감독관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떤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빠져있다. 그는 그 안에서 절망감을 느끼지만, 그의 상사 리비에르는 그를 고민의 늪에서 나와 강렬한 행동의 대열에 참여하도록 종용한다. 

파비엥은 조종사다.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다. 그가 맡은 업무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데, 심각한 날씨로 인해 본부와 무선연결이 되지 않는다. 

리비에르, 그리고 파비엥의 아내는 본부에서 파비엥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지만, 파비엥의 연락은 두절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번 사고로 인해 야간비행이 사라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리비에르는 '실패는 강한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은 희생되고, 야간비행은 계속된다. 

2. 개인의 삶 vs 집단 혹은 어떤 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
영화 덩케르크를 봤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포위되어 있던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덩케르크 해안에서 탈출하던 상황을 그린 영화였다. 약 30~40만명의 연합군이 덩케르크 해안이 포위되어 있었고, 그들은 탈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영국 해안은 덩케르크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해안의 끝에서 영국 땅이 보일 정도였다. 

영화는 극적으로 탈출하는 영국군의 모습을 그렸다. 100여분의 영화 내내 한스 짐머가 만든 감동적인 OST가 울렸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쉽게 영화를 보기 힘들 정도로, 답답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영화 속엔 어떤 개인이 없었다. 영화의 시선은 전쟁에 참여한 개개인의 병사들의 시선으로 그려졌다. 그들은 해안에서 배로 탈출했고, 혹은 다시 그 배가 폭격기나 어뢰에 좌초되어 다시 해안으로 돌아왔다가 다시금 탈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건 여러 모습이었지만,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영화 마지막 즈음에 덩케르크 해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민간 요트, 민간 구명보트들의 물결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자식을 잃은, 혹은 영국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이들이 덩케르크 해안에 갇힌 자신의 아들같은 병사들을 구하고자 나선 것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도 인상 깊었다. 영국으로 탈출한 병사들이 패잔병으로서 자신의 처지를 아쉽게 여길 때, 그들은 자신들을 두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나를 위해 애국한 병사들을 향해 영국 국민들은 환호한다. 

영화는 처칠의 연설로 마무리를 맺는다. 이 땅에 자유와 희망이 가득차게 될 것이라는. 그런 어떤 가슴 뭉클한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종류의 연설이었다. 

그 영화 속엔 묘하게도 개인이 없었다. 영화 장면은 계속 여러 개인들의 모습을 비추고자 애썼지만, 그 안엔 어떤 공통된 가치를 위해 자신의 욕망이라던가 혹은 행복이 절제된 개인의 모습만이 그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은 도려지고, 그 안에 남아 있는 건 어떤 국가에 대한 모습이라던가, 이데올로기라던가, 추상적인 가치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영국인으로서의 자부심, 민족주의의 잔여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인들은 이 영화를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 아니, 애초에 이 영화는 독일에서 상영은 되었을까.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은 어찌 보면 이 영화와 참 유사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다. 그 안에도 전체의 가치를 위해 희생된 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포스팅을 하기 전에 몇몇 다른 블로거의 글도 읽어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책에서 ‘리비에르’의 냉철한 실행력과 리더십을 읽었다고 한다. 사람의 생각이야, 당연히 다를 수 있으니까. 같은 이야기를 읽어도 서로 다른 걸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읽은 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내가 읽은 건 그런 냉혈한 리더십 하에서도 빛나는 어떤 개인의 모습이었다. 전체의 가치를 위해 희생되었던 개인의 가치는 과연 보잘 것 없는 것이었는지? 전체를 위해 희생된 개인의 가치는 모두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자유로운 개인의 사유와 고민, 그리고 행복은 어떤 것인지? 나는 그런 질문을 하며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 난 이런 문장이 꽤 인상깊게 읽었다. 

“전체의 이익은 개개인의 이익이 모여 이루어지죠.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않아요.” 
한참 후에 리비에르가 그에게 대답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넘어서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요…… 그런데 그게 무엇일까요?”

혹은 이런 문장이었다. 

무슨 명목으로 나는 그들을 성소에서 끌어낸 것일까? 대체 무슨 명목으로 그들을 개인적인 행복으로부터 빼내 왔을까? 그런 행복을 보호하자는 게 제일의 법칙 아니었나? 그런데 자기 자신도 그 행복을 부숴 버리고 있었다. 황금빛 성소들은 운명적으로 언젠가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다른 사람들은 과연 덩케르크란 영화, 그리고 야간비행이란 소설을 어떻게 읽었을까? 그들은 전체의 가치에서 이야기를 읽었을까, 아니면 개인의 가치에서 이야기를 보았을까. 

3. ‘야간비행' 3줄 평 
- 1900년대 우편 항공사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
- 생텍쥐페리의 경험과 사유에서 부러움이 느껴진다. 
- 전체의 가치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개인의 가치를 고민해볼 수 있는 책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7. 27. 23:45
파스타 만들기 
예전에 몰타에 몇 달간 머물 때 거의 매일 같이 파스타를 해먹곤 했다. 아침식사와 저녁식사가 모두 파스타였으니, 사실 경험치로 치면 웬만한 한국 사람이 평생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파스타를 그 시간동안 만들어 본 것 같다. 

파스타 만드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한 쪽에선 냄비에 물을 넣고, 그 위에 올리브 유를 띄운다. 물이 어느 정도 끓으면 그 안에 파스타 면을 넣고, 정해놓은 시간만큼 끓여준다. 그 와중에 다른 한 쪽 후라이팬도 쉬지 않고 돌린다. 적당히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올려서 볶아준다. 적당히 마늘이 볶아지면, 파스타에 넣고 싶은 야채를 넣는다. 단 맛을 강조하고 싶으면 보통 양파를 많이 넣고, 풍미를 넣고 싶으면 파 종류를, 물기 있는 맛을 넣고 싶으면 버섯을 넣는다.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미리 준비해놓은 토마토를 안에 넣어서 팟팟 부숴준다. 토마토가 부숴지면서 안에 들어있던 재료에 맛이 베인다. 아마 파스타 면이 다 준비가 됐을 텐데 미리 물에서 꺼내서 적당히 물기를 빼주고 후라이팬에 면을 넣는다. 섞고 있는 재료에 물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냄비 안에 있는 물을 후라이팬으로 옮겨서 수분을 보충한다. 이 시점에서 난 청량고추와 함께 파슬리, 후추를 가미한 뒤에 접시에 담아 먹었다. 

한 문단으로 쉽게 적을 수 있는 레시피이니 누구라도 이렇게 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파스타를 해먹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재료란 것들이 참 제각각인데, 다들 적당히 섞여서 적당히 비슷한 맛이 되어버리는구나. 이 재료들이 다른 곳에 들어가도 다른 재료와 섞여서 다들 적당히 비슷한 맛이 되어버릴텐데. 재료는 다들 하나의 독립된 개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모였을 땐 모인 집단의 개성으로 통일되는 경향을 가진다. 

그나저나 내가 이런 파스타 글을 어떤 맥락으로 쓰기로 마음먹었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저녁식사로 홍합 파스타를 먹긴 했다. 이래저래 먹는 것에 휘둘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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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7. 26. 23:19
여름에 입는 옷에 관하여 
요즘 내가 입는 옷은 매우 한정적이다. 상의로는 총 9종이고, 하의로는 딱 3종 밖에 되지 않는다. 상의 9종 중 5종은 셔츠의 형태를 띄고 있고, 3종은 폴로티, 1종은 7부 반팔이다. 하의 3종은 모두 반바지이다. 

매일 다른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매일 다른 상의를 입는다. 이틀 연속으로 다른 종류의 옷을 입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건 주말을 끼면 달라진다. 평일 5일 간 만나는 사람들은 연속적으로 나를 만나게 되지만, 주말 이틀 간 만나는 사람들은 평일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금요일과 토요일의 옷이 같아도 큰 상관이 없고, 마찬가지로 일요일과 월요일의 옷이 같아도 큰 상관이 없다. 

어차피 내게 있어 옷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대부분의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정작 맨 처음 옷을 구입할 때는 나 자신의 미적 가치와 나 자신을 위한 기능으로서 옷을 구입하지만, 옷을 입게 되는 평소엔 그 옷이 타인을 통해서 가치를 증명한다는 점이 우습다. 물론 어쩌다 내가 거울을 볼 때가 있고, 이 때 난 타자의 시선으로 옷을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이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어떻게 여름인데 이틀 연속으로 같은 옷을 입을 수 있죠? 빨래도 안해요?’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내 땀이 젖는 부분은 내 속옷과 내의 부분이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상의 안에는 항상 내의를 걸친다. 그 덕분에 땀이 닿는 대부분의 위치는 내의이다. 매일 같이 새로운 내의와 속옷을 입고 있으니 그래도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위생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깥에 입는 옷도 가끔 내가 냄새를 맡았을 때 꿉꿉하다고 느끼거나 얼룩이나 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 바로 빨래를 한다. 이 때문에 9종의 옷은 보통 이르면 1주일에 한 번, 늦으면 2달의 한 번 빨래를 하기도 한다. 막상 이렇게 써놓고 나니, 어떤 사람들은 이걸 참 더럽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여러 벌의 여름 옷을 샀었다. 매 여름이 되면 못해도 5종이 넘는 여름 옷을 장만했던 것 같은데 항상 남아 있는 건 얼마 안된다. 내가 마음 먹고 옷을 버린 경우도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막상 한 계절을 건너서 다른 계절로 옮기고 나면 그 옷들이 모두 어딘가로 사라지곤 한다. 

작년엔 우연히 가을에 옷 정리를 하다가 5년 전에 잃어버린 정장 바지를 찾았다. 꽤나 아끼는 바지였기 때문에 잃어버렸을 당시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옷장을 다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던 녀석이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러던 걸 너무나 어이없이 찾았다. 옷장 한 쪽에 고이 접혀 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 내 바지를 가져가서 실컷 입고 5년이 지나니까 ‘아, 이젠 충분히 입었어. 주인에게 돌려줘도 되겠구만!’이라고 마음 먹은 것처럼. (만일 이 상상이 진실이라면, 그렇게 마음 먹으신 그 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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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