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7. 22. 23:09
이토록 평범한 날들 
혼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간 적이 있었다. 애초에 오스트리아 여행을 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스트리아를 둘러싼 역사에 대해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내겐 오스트리아를 둘러보겠다는 아무런 의욕도 목적의식도 없었다. 아무런 목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먼 곳까지 갈 수 있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정말 아주 순수한 의도였다. 그냥 주변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같은 곳을 가길 원하니까 보통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오스트리아를 여행 목적지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비행기 표를 끊어서 그곳에 갔다. 여행 계획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비행기표와 3일 간 머물 호텔 티켓만 끊었다. (딱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로망을 즐길 생각이 아니라서, 다들 그리도 많이 간다는 한국인 숙소도 가지 않았다.) 그리곤 정말 여유롭게 지냈다. 마치 내가 서울에서 아무런 약속없이 주말을 낭비하는 느낌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시간을 낭비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3~4시간 동안 책을 보다가, 근처에 뭐 살 거 없나 아이쇼핑하는 느낌으로. 

그래도 당시 그곳에 있을 때는 내가 지금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내 인생 전체를 둘러보았을 때 꽤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기억은 참 피동적이다. 당시 내가 얼마나 독창적인 생각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을 만났나, 혹은 내가 얼마나 특별한 장소에 있었나에 따라 결정된다. 오스트리아에 머문 3일(여기에 헝가리에서 3일을 더 있었다.) 내내 난 어떤 특별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비엔나 시내 곳곳에 정말 멋진 성당도 많았고, 공연도 많았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그 어느곳도 가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었고, 시간을 떼우려고 카페에 갔다. 그 순간에 내가 어떤 독창적인 생각을 한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도 않았다. 한국에 귀국해서는 아무 일 없듯이 살아갔다. 친구들과 만나도 내가 오스트리아에 갔었다는 얘길 하는데, 막상 거기서 뭐했냐, 라고 물어보면 ‘글쎄? 밥먹고 커피 마신 거?’ 정도 밖에 할 얘기가 없다. 근데 우습게도 그 당시 내가 오스트리아에 갔던 건 평생에 남을 기억이 됐다.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며 놀고 있을 때 난 정반대의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의 나는 아마 1년 아니, 6개월 정도만 지나도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겠지. 그냥 과거 나의 평범한 일상 중 하나로 남아서 어딘가로 흩어져 버리겠지. 

인터넷 공간에서 봤던 어떤 영상이 기억이 난다.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만 남겨두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은 지워버린 사람이 있다. 결론은? 10분도 안되서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나버렸다는 것. 내 인생에서 영원히 내 기억에 남아있을 기억이라 한다면 사실 10분은 좀 짧긴 하다. 얼마나로 하면 좋을까. 아마 1달 정도? 1달 정도의 시간들만 남겨두고 나머지 수십 년의 시간은 모두 휴지통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내 인생의 99%는 정말 평범한 날로 가득차 있는데. 이걸 기억 속에 넣어둘 순 없으니, 이를 어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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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7. 21. 23:39
불안감
내가 8살 때를 회상해보면 항상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아침 7시, 학교 갈 준비를 할 때도 내 마음 속을 지배하는 감정은 불안이었다. ‘책은 다 챙겼나?’ ‘학교 가서 화장실 가지 않아야 할 텐데.’ ‘날씨는 괜찮은가?’ ‘친구A가 날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오늘 축구에선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느낌은 폭풍우처럼 밀려든다.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된다고 해서 이런 느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모든 시간엔 그 시간에 어울리는 불안이 있다. 어두운 저녁엔 보통 이런 불안함이 두려움으로 변색된다. 어두운 동네 밤 거리를 걷고 있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가지를 보면서 귀신을 떠올렸고, 쓰레기통 뒷편에서 괴물 같은 것이 뛰쳐나올까봐 두려웠다. 어릴 때 귀신을 상상하는 건 워낙 당연한 거라 나이가 들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감정의 근원이 불안함이었다는 걸 요즘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행복한 변화는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나,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건강에 대한 걱정은 있지만, 이런 걱정들은 불안의 감정과는 다르다. 불안이라고 하는 건 외피 안 쪽에 위치한 내피를 흐르는 혈관 하나하나에 차가운 기운을 불어넣는 느낌이다. 불안이라고 하는 건 단지 불안하다고 여기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된 빈자리는 또다른 문제로 채워진다. 불안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어떤 문제거리를 찾아서 의식의 표피로 끌어당기는 느낌에 가깝다. 

난 왜 그리도 불안감을 느꼈던 걸까. 내가 그닥 불행한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는데. 부모님 모두가 다 잘 계시고, 내 나름의 판단으로 보기엔 꽤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평일엔 아버지 얼굴을 보기 힘들만큼 바쁘게 일하시기 때문에, 주부셨던 어머니만 보고 자랐지만, 그 당시엔 대부분 가정들이 비슷비슷했다. 어떤 회사를 다니던 간에 회사원이라면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절이었다. 부모님께 어떤 건강 상의 문제가 있었냐 하면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 요즘에야 어머니께서 항상 아프다는 말을 연발하시고, 아버지도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셨지만, 당시 두 분은 어디 나가도 건강하다는 소리를 들으실만 했다. 그럼 내가 아팠나? 아주 어릴 적에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고, 자주 감기로 고생해서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다니곤 했지만, 그것이 나를 다른 친구들과 분리시킬만한 여지를 제공한 건 또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어릴 적엔 불안함을 끼고 살았을까?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불안한 감정이 사그라드는 경험을 해보았을까? 만일 어릴 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나로서는 가끔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걸 바란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딱히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건강 상 내가 힘들었던 것도 아니지만, 난 항상 불안감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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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7. 20. 23:45

저자 : 이디스 워튼 / 옮긴이 : 손영미 
출판사 : (주)문예출판사 
초판 1쇄 발행 : 2007년 9월 21일 (원작 발행 : 1911년) 

1. 누가 잘못한 것인가? 
해설서에 의하면, 작가 이디스 워튼이 자신의 남편인 테디와의 이혼을 앞두며 그녀를 힘들게 만들던남편을 소설 속 인물(지나)로 분하게 만들어 자신의 입장을 검토하고, 여러 인물 간의 도덕성과 함의를 파헤쳤다고 밝히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 본인은 이선 프롬과 정반대되는 성별인 여성이란 점이다. 자신의 입장과 소설 속 주인공들의 입장을 정반대로 대치시킴을 통해, 그 안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느끼게 될 감정을 관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던 것은 아닐까.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시간에 흐름에 따른 이선 프롬의 아내인 ‘지나’의 병세이다. 

(결혼 전) 건강의 화신 > (결혼 후) 꾀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독한 병세 > (사고 후) 두 명의 병자를 돌볼 정도로 회복

(해당 부분을 묘사한 소설 부분 발췌- 초반부)
게다가 그녀는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 병색이 돌기 시작하더니 아픈 사람 많은 이 동네에서도 유별난 존재가 되었다. 처음 모친을 수발하러 왔을 때 이선은 그녀를 건강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녀가 그처럼 간호에 능숙한 건 바로 자신의 병세를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나 역시 차츰 말수가 줄었다. 

(해당 부분을 묘사한 소설 부분 발췌- 후반부)
“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기 있었죠. 지나는 그녀와 이선을 위해 나름대로 애써왔고, 지나가 얼마나 아팠던가 생각하면 이건 기적이죠. 그런데 그럴 필요가 생기니까 금방 떨치고 일어나더라고요. 요새도 가끔 의사한테도 가고 아파 누울 때도 있지만, 20년 이상 저 두사람을 돌봐왔어요. 그 사고 전에는 자기 한 몸도 주체 못 하던 사람이.” 

이 책에선 이선 프롬의 아내 ‘지나’가 실제 병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자신이 남편인 이선 프롬으로부터 정서적 관심을 유도하고 권력적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꾸민 꾀병인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답이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소설 후반부에 묘사된 지나의 행동을 통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나가 어떤 상황이었든간에, 그녀의 병세는 그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주인공 이선 프롬과 매티 세 사람이 동시에 불행한 현실로 끌려 들어가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지나만을 비난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매티, 이선 두 인물은 단지 사랑의 주인공이란 점에서 비난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에선 주로 이 두 인물의 시각으로 서술되는데, 이 때문에 이들이 저지른 바람(?)에 가까운 행각에 대해선 무시하듯 지나친다. 물론 이 역시도 지나의 병세와 남편에 대한 태도가 원인제공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각각의 인물들을 평가해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잘못한 것일까?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 사람이 가진 생각은 무엇일까? 그 생각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라는 여러 질문을 해보는 재미가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책을 읽은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질문을 떠올려 볼 수 있다는 점이 꽤 흥미로운 점이다. 

2. ‘이선 프롬' 3줄 평 
- 죽음이란 건 보통 비극이기 마련인데, 가끔은 살아있다는게 더 끔찍할 때가 있다. 
- 한정된 공간 안에 있는 한정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이보다 생생하고 과감히 그릴 수 있을까. 
- 한 개인의 감정이 다른 개인의 감정과 부딪칠 때,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소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