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7. 13. 23:56

저자 : 아멜리 노통브 / 옮긴이 : 성귀수 
출판사 : 문학세계사
초판 1쇄 발행 : 2001년 11월 20일 

1. 책을 읽으셨나요? 
책 제목으로 내 블로그에 오신 분들은 보통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할 거라 생각한다. 책을 이미 읽었거나, 읽지 않으셨거나. 만일 읽기 전에 우연히 방문하신 분이라면, 당장 서점에 가서 책을 읽으시길 권한다. 이 책은 문장도 단순하고, 분량도 짧다. 덕분에 쉽게 읽히고, 금방 읽을 수 있다. 가끔 파스칼이라던가, 랭보라던가, 루쉰 같은 철학자나 소설가의 이름이 등장하긴 한다. 사실 그게 백미다. 라면 끓여 먹는 건 참 쉽고 편한데, 거기에 갑자기 전복이라던가, 새우라던가, 굴 같은 독특한 풍미의 재료가 들어가는 모양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두고 ‘그런 좋은 재료를 라면 따위로 망가트리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그 재료들을 먹는 최고의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라면 아니었나?’라고 말할 것 같다. 이야기가 갑자기 라면 조리법으로 샜는데, 이 책의 매력이 그런 느낌이라는 걸 묘사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난 이 책을 10년 만에 두 번째로 읽었다. 두 번 읽고난 나의 태도는 선명하다. 대놓고 추천한다.  다 읽고 나면 '이게 책 읽는 맛이지!'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책이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2. 인상깊은 문구와 그 감상 
"신의 무용성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내부의 적이 전능하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보상인 셈이죠. 머리 위에 군림하는 은혜로운 독재자 덕에 산다고 믿었지만, 실은 자신의 뱃속에 웅크린 적의에 찬 폭군의 힘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겁니다." 

1532년 프리울리의 몬테레알레에서 태어나 자란 방앗간지기 ‘메노키오’가 떠오른다. 메노키오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단 하나 그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농촌에서 구할 수 있던 수십 권의 책을 독서했다는 것이었고, 독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묘하게 발전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중세 유럽의 사고방식을 벗어나 하느님과 천사를 이렇게 묘사한다. ‘이 세계는 치즈와 같고 거기에서 생겨난 구더기 같은 것이 하느님과 천사라고 하는 그 기기묘묘한 주장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했다. -일요일의 역사가, 주경철, 현대문학, 2017-

(스포입니다만) 이 책은 고집스럽게 ‘자아’를 탐색하고 나선다. 사실 ‘자아’에서 시작해서 ‘자아’로 끝난다. 소설의 구성은 철저히 대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다른 어떤 사람과 교류하면서 이뤄지는 대화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방식은 아주 내적으로 움직인다.  

16세기 중세시대 메노키오가 도달한 신을 바라보는 방식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것이 흐르는 생각의 방향은 외부에서 오지 않고, 내면으로 흐른다. 그 당시 사회에선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관점이다. 그러다보니, 당시 중세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기초적인 관념마저도 부정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실은 겉에서 오고 가는 것인 것처럼 보여도, 실은 세상 모든 것이 내면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3백년 전의 어느 대단한 철학자가 자아란 가증스런 거라고 말할 수 있고, 지난 세기의 위대한 시인 하나가 나는 곧 타자라고 말해도 되는 건, 다 그래서야. (역자 주 : 철학자는 파스칼을 시인은 랭보를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좌지우지 할 수 있고, 삶은 내게 원하는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건 어릴 적엔 단단히 믿었던 사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지지하는 힘이다. 그럼에도 이런 믿음이 너무나 어려운 사실은 ‘나’라는 존재가 마치 ‘타자’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명징한 형태를 띠면서 내가 원하는 목표를 방해한다. (혹은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며,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내가 나라는 지옥을 어떻게 헤쳐 넘어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3. '적의 화장법' 3줄 평 
- 이 책을 11년 만에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역시나 이 책은 충격적이다. 
- 보통 소설을 읽으면 생각의 초점이 소설로 향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 초점이 내게로 급돌진한다. 
- 짧으면서도, 파괴력 있는 소설이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시, 에세이2017. 7. 12. 23:42

저자 : 김민철
출판사 : 북라이프
초판 1쇄 발행 : 2015년 7월 10일 

1. 취향저격 
6년 전, 난 블로그를 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책 블로그'와는 주제가 달랐다. 그 땐 '광고 블로그'였다. 한 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광고들을 보고 분석하는 일을 하곤 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광고는 TBWA의 박웅현이란 광고인이 만든 광고였다. '진심이 짓는다' 시리즈나 'See the Unseen' 같은 광고를 즐겨보았다. 고작 15초짜리 영상을 보면서 '즐겨보았다'을 쓰는 건 좀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영상을 10번이고 100번이고 돌려보면서 감상했으니, 감히 '즐겨보았다'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마 그 때 내가 처음으로 김민철이라는 카피라이터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TBWA에서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를 맞고 있던 박웅현이 팀원으로 데리고 일하던 사람이 김민철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기억으로 난 이 책을 골랐다. 광고를 매력적으로 쓰는 사람이니, 아마 그가 쓰는 책도 어떤 매력을 담고 있지 않을까? 

역시나. 취향저격이었다.

2. 가슴을 뛰게 하는 구절들. 
이 책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싶지 않다. 단지,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슴 뛰는 구절들을 함께 나누고 싶고, 기록하고 싶다. 내게 책에 밑줄 그은 수많은 구절 중에, 가장 예쁜 것만 모아서 소개한다.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은 어쩌면 나의 철저한 '오독'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안 듣고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내 세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빵집 아들의 운명은 도넛이다. 그렇기에 늘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김연수 작가의 깨달음이었다. 
<청춘의 문장들>에서 그 구절을 읽는 순간 갑자기 나는 나의 운명을 깨달았다. 나는 검은 건반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늘 어두운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마침내, 팀장님에게 말하기로 했다. 가을밤이었다. 비가 오는 가을밤이었다. 회사 옆 가로수길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빗방울에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술집 야외 테라스에 앉아 팀장님에게 말했다. 그만두겠다고. 처음 이 팀에 올 때 말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오래 일하지는 못할 거라고, 저는 그만두고 프랑스에 갈 생각이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 순간이 되었다고 팀장님에게 말했다. 팀장님은 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민철아, 여기가 지중해야. 봐봐. 여기가 지중해야. 다른 곳에 지중해가 있는 게 아니야."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처음부터 의도는 없었다. 의도가 있었다면 이토록 성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늘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멀리서도 보였고, 다가갈수록 가슴이 뛰었다. 

나는 내가 강백호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강백호 같은 농구 천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구는 해본 적이 없지만, 점프력이 좋고, 공을 향한 집념이 강하고, 끈기도 있고, 지구력도 있고, 승부욕도 있고, 서태웅을 향한 질투도 강하고, 소연이에 대한 사랑도 강해서 농구를 한번 시작만 하면 잘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사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3. '모든 요일의 기록' 3줄 평 
- 책 군데군데 보물처럼 숨겨진 문구들이 많아서 참 좋았다. 
- 김민철 작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피 문구를 쓴 카피라이터다. 그래서일까, 책 속 문구들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 나도 이 사람처럼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Posted by 스케치*

저자 : 지나 키팅 / 옮긴이 : 박종근
출판사 : 한빛비즈
초판 1쇄 발행 : 2015년 2월 27일 
전자책 발행 : 2015년 3월 7일 

1.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없구나. 
한국에 넷플릭스가 들어온지도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처음 들어올 땐 멋 모르는 미국 대기업이 한국 콘텐츠 시장을 우습게 본다고 생각했다.

난 이미 Pooq과 같은 지상파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도 사용하고 있었고, KT에서 제공한 IP 셋톱박스로 TV를 보고 있었다. Youtube로 게임방송이나 재밌는 5분짜리 영상도 즐겨보는 편이었고, 영화나 드라마(한드, 미드, 중드, 일드)가 보고 싶으면 토렌트나 P2P 사이트로 다운받아 보는 걸 즐겼다. 

그래도 넷플릭스는 한국을 제외한 영미권 국가에선 비디오를 보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고, 미국에선 강력한 경쟁자를 무찌르며 시장을 파괴하고 재조직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까닭에 넷플릭스를 경험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난 1개월 무료 이용권을 이용해 넷플릭스에 가입했고, 동영상을 몇 개 보지 않고 넷플릭스를 해지했다. 

그리고 1년 뒤, 우연히 넷플릭스가 다시 1개월 무료 이용권 홍보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지정생존자'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비디오가 보고 싶었던 무료 이용권만 이용하고 다시 해지할 생각으로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약 3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그 크기가 방대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것이 정말 빠른 회사이다. 초기 한국에 진출했을 당시에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콘텐츠 부족 문제는 이미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넷플릭스가 자랑하는 오리지널 비디오 뿐만 아니라, 이미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제공되고 있었고, 한국에서 상당히 유행하고 있는 인기 콘텐츠들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 '미생', '응답하라 시리즈', '신사의 품격', '청춘시대', '아이리스' 같은 콘텐츠가 추가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에 내가 잘 알지도 못했던 중국이나 일본의 콘텐츠들도 번역되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 영화는 더욱 괴랄스럽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을 포함하여, 미국이 자랑하는 다양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훌륭한 수준으로 번역되어 제공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놀라운 콘텐츠들은 내가 가장 흥미로워할만한 콘텐츠부터 순서별로, 깔끔한 UX로 제공된다. 놀랍다. 이걸 찬사하는 내 자신이 바보같을 정도로. 

지나 키팅의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은 넷플릭스가 처음 랜돌프에 의해 탄생하여, 헤이스팅스와 같은 뛰어난 CEO에 의해 재창조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이 책이 그 전에 내가 읽었던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와 같은 책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이 책에서 넷플릭스가 겪었던 수많은 진통들이 너무나 절묘히 묘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보는 넷플릭스는 시스템적으로 완벽하기도 하거니와 경쟁자들에 비해 압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넷플릭스가 걸어온 역정이 순탄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이 책은 이런 나의 생각을 뒤집고 뒤흔든다. 넷플릭스가 걸어온 길은 명확한 미래에 대한 확신을 통해 닦인 것이지만, 넷플릭스가 성공하기까진 수많은 도전과 문제점이 위치했다. 이 책에서 선보이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 온라인 간의 경쟁인데, 그 부분은 흡사 소설 삼국지에서 위나라와 촉나라 사이에 펼치는 치열한 전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어떤 면에선 넷플릭스의 헤이스팅스와 블록버스터 온라인의 안티오코가 SF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의 모습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넷플릭스처럼 선도적인 기업조차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 가능성이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하나의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건 정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넷플릭스가 이뤄놓은 서비스를 쉽게 이용하면서, 나는 넷플릭스가 성장한 자취마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나저나, 로쿠 박스가 넷플릭스 안에서 성장한 스타트업이라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어쩐지 범상치 않은 기업이더니만...) 

2.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 3줄 평 
-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없구나. 이 회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 스타트업이 대기업까지 성장하기 위한 많은 것이 설명되어 있다. 비전, 노력, 인사, 경쟁, 운 등등. 
- 소설처럼 읽어도 재밌는 책이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