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7. 4. 23:15

저자 : 타카기 나오코 / 옮긴이 : 채다인
출판사 : (주)살림출판사
초판 1쇄 발행 : 2016년 7월 5일 

1. 정말 배고프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일본 오사카에 가서 이것 저것 음식을 먹었다. 나름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식을 시도해보자고 마음먹었으나, 막상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먹어본 음식은 몇 개 되지 않았다. 타코야키, 오코노미야키, 초밥, 튀김, 라멘, 일본 특유의 디저트, 호로요이 같은 것이었다. 당시엔 맛있다고 먹었던 거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다른 사람들 먹는 걸 나도 마찬가지로 먹어본 정도랄까. 

물론 내 마음대로 음식을 고르진 못했다. 가족과 함께 온 여행이었다. 부모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음식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정말 실패하지 않을 선에서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희안한 음식은 별로 시도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대형 라멘 같은 것. 일본 가기 1주일 전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았던 대형 라멘집. 오사카에 있는 라멘집인데, 1인용 라멘인데도 라멘은 물론이고 그 위에 올라가는 고명들이 정말 푸짐하게 올라와서 성인 남성 혼자서도 다 먹기 힘들 정도로 무리가 간다고 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처음 그곳을 봤을 땐, '그래, 여기야!'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어머니를 생각해보면서 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식탐만세'를 읽다보니 다시 혼자 오사카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음. 다른 목적은 다 제쳐두고 오로지 먹는 것. 술 마시는 것. 딱 2가지만 하고 싶은 친구와 함께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하루 5끼를 거뜬히 먹으면서 주구장창 먹는 것만 고민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먹는 것만 고민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 그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어릴 적 내가 로마 귀족을 떠올리며 상상했던 그들의 일상이다.

'식탐만세'를 읽으며 참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이 만화가 특별히 엄청난 주인공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가진 가게 주인을 묘사하지 않더라도, 그저 이것 저것 먹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식욕이 폭발한다. 

가장 압권은 아무래도 다코야키다. 친구와 함께 오사카에 여행을 떠나서, 여행 내내 다코야키를 먹는 모습이 묘사된다. 정말이지 여행 내내다. 아침에 다코야키, 점심에 다코야키, 저녁에 다코야키다. 배가 터질 정도로 다코야키를 먹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읽다보면,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 다코야키를 사오고 싶다. 

2. '식탐만세' 3줄 평 
- 이 만화를 읽은 것에 크게 후회. 저녁에 야식이 너무 먹고 싶다.  
- 한국인이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미묘한 요리들이 많이 나와서 인상적. (스페셜 낫토, 돈테키, 라디오야키, 포민톤)
- 작가처럼 한 가지 요리만 정해놓고, 주구장창 그 요리만 먹는 여행을 하는 것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7. 3. 23:32

저자 : 아니 에르노 / 옮긴이 : 최정수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 2001년 6월 20일 
전자책 발행 : 2016년 12월 12일 

1. 사랑하다, 헤어지다, 다시 만나다, 스러지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이 책에 쓰여진 이야기들을 어렴풋이나마 나만의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내가 만일 우연히라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면, 정말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는 위기에 놓였더라면, 그것을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어설픈 프리즘으로 마주하는 상황에 처했더라면, 난 과연 어땠을까. 

작가가 실제로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않고 소설을 썼을 리가 없다. 만일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라면 '이게 뭔 헛소리야'라고 치부했을 것만 같다. 다행히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런 노래들은 솔직하고 거리감 없이 열정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말해주었다. 실비 바르탕이 노래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를 들으면서 사랑의 열정은 나만이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가요는 그 당시 내 생활의 일부였고,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시켜주었다. 

내게도 노래가 훅 파고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지금은 열심히 거부하고자 하지만, 당시 난 운명론에 빠져 있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읽었던 문구엔 그런 감정을 뇌에서 오고 간 호르몬 작용이라 치부했지만, 그게 뭐 어때서. 호르몬이 나오는 건 나오는 거고, 내가 좋은 건 좋은 거였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심도는 주인공이 A와 헤어진 순간에 나온다. 정말 사랑한 사람과 헤어지고, 그 사람이 떠나갔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의 흐름이 이 짧은 소설엔 정말 잘 응축되어 있다. 내가 마주했던 그 사람.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장소와 물건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이 그 사람 이외에는 어떤 의미도 없이 멈춰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꺼풀이 벗겨지듯 제 색깔을 되찾아 오는 것. 이 소설은 그런 부분들을 정말 잘 공감가게 엮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게 세상은 A 없이도 다시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일까? 수많은 영상과 몸짓과 대화가 있었던 그 사람과의 첫날밤 이후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 모스크바의 고양이 조련사, 목욕 가운, 바르비종 같은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쓰이지 않은 열정적인 소설의 텍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들이 서서히 스러지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2. '단순한 열정' 3줄 평 
- 짧지만 매혹적이다. 
- 이처럼 사랑의 감정이 껍질까지 세밀히 묘사된 책도 생각해보면 드문 편이다. 
- 초봄 같은 소설이었다. 


Posted by 스케치*

저자 : 주홍식
출판사 : (주)일에이치코리아
초판 1쇄 발행 : 2017년 5월 29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6월 14일 

1. 스타벅스라는 공간에 관해 생각해보며 
요즘 난 주말 아침마다 스타벅스에 간다. 아침 9시쯤에 가면 점심을 먹기 전 12시까지는 카페에 앉아 있는 편이다. 계산은 편하다. 정기적으로 스타벅스에 가다보니 아예 매달 5만원 씩 카드를 충전하고 쓴다. 카드는 물론 모바일 앱 속에 들어 있다. 자동 충전을 걸어두면 굳이 복잡한 거래 시스템을 켜고 끌 필요가 없다. 

'뭔 돈을 커피 먹는 거에 5만원 씩이나 충전시켜서 쓰나. 사치 부리네.’ 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또 그런 건 아니다. 난 커피 마시는 거에 5만원을 쓰는 게 아니라, 나 혼자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공간을 대여하는 데에 매달 5만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요즘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알쓸신잡’이란 프로그램에서도 카페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유시민 작가는 카페를 초단기 부동산업이라 정의한다.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장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공간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에 있는 중간 성격의 공간을 제공함을 통해 사람들이 더 편하게 그곳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카페가 동일한 공간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카페마다 제공하는 공간의 형태는 다들 어딘가 다르다. 어떤 카페는 공간에 신경 썼다는 느낌보다는 커피에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고, 또 어떤 곳은 내가 원하는 공간 형태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게 몇 곳을 고르다보면 내가 가장 원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 추려지게 되고, 이 기준에 맞춰서 돈을 쓰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스타벅스란 공간이 구성되기 위해서 하워드 슐츠와 스타벅스코리아가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내가 실제로 경험해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많아서 부담없이 읽기 좋았다. 실제로 별로라고 생각한 서비스인데, 책 안에서만 자화자찬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테니까.

오히려 내가 별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던 서비스인데, 많은 고민과 논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도 있어서 흥미롭게 생각했다. 예를 들어, 닉네임을 부르는 서비스. 이 서비스는 다른 어떤 카페도 아닌 스타벅스가 갖고 있는 특수성이다. 내가 스타벅스 모바일 앱으로 어떤 닉네임을 등록을 한 후, 이 앱을 통해 주문을 하면 내가 등록한 닉네임으로 커피를 제공한다. 내가 만약에 ‘스케치’라는 닉네임을 적어두면, 실제로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이 ‘스케치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라고 불러준다. 이런 서비스를 난 참 당연하다는 듯 생각했는데, 스타벅스도 상당히 고민한 시스템이었다. 

스타벅스에 진동벨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그걸 인식 못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고객에게 접근하고 마주하는 서비스를 위해 고객 닉네임을 부르는 시스템을 도입한 거다. 물론 닉네임을 등록하지 않았으면 한국에선 A-42같은 숫자로 주문을 받는 것 같다. 근데 실제로 미국에 가면 닉네임이 등록되지 않았을 경우 직접 이름을 물어본다. 고객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지 물어보고, 이 이름으로 주문된 커피를 불러준다. 별거 아닌 사소한 차이인데, 참 느낌이 다르다. 

책을 쭉 읽다보면, 좀 자뻑이 심하긴 하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 곳인지, 그리고 어떤 복지와 혜택이 있는지 계속 나열되어 있어서, 이게 기업 홍보지 같단 느낌도 들긴 한다.  사실 뭐, 스타벅스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쓰는 글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2.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 3줄 평 
-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스타벅스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디테일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 성공한 기업은 그 형태가 비슷한 것 같다. 돈을 넘어서, 비전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것. 
- 어떤 면에서 보면 스타벅스 홍보 책자같은 면도 있다. 회사 복지 홍보 책자 같기도 하고.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