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7. 10. 23:24

저자 : 프레드릭 배크만 / 옮긴이 : 이은선
출판사 : 다산북스
전자책 발행 : 2017년 6월 28일 

1. 기억과 상실을 담은 소설 
가끔은 동화같은 책을 읽는 게 좋다. 생 텍쥐베리의 '어린왕자' 같은 책이 좋은 이유는 그 책이 여러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훈을 넘어서서 그 책이 풍기고 있는 어떤 황야의 따뜻함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왕자' 같은 책을 읽게 되면 우리 주변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각종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용히 사색하며, 한 번에 딱 한 가지씩 생각하며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명확히 기술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그의 손자 노아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이 현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아니면 노인의 머릿속에서 노아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는지 불명확하다. 환상 혹은 동화같은 소설 안에서 노인은 그가 사랑했던 아내, 소중한 손자 노아, 노인을 아끼는 테드와 함께 노인이 가장 아끼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대화가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는 대화 속에 어떤 사랑이나 행복의 기준이 잡혀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편견이나 명확한 진리를 향한 추종도 제외되어 있다. 단지 노인이 좋아했던 시덥잖은 농담과, 노인이 좋아했던 작은 취미, 노인이 좋아했던 쓸모없는 선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내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이후, 치매증상으로 오래 고생하셨다. 할아버지는 본디 말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내가 기억을 가진 때는 이미 치매증상을 앓고 계셨으니, 실제론 말이 많은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장난을 치거나 떠들며 집안을 돌아다니면, 할아버지는 엄중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시고 조용할 것을 제안하셨다. 기억 속에 그 분은 그런 분이었다. 

할아버지라던가, 혹은 요양원에서 할아버지 옆 자리에 누워계시던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며 그곳에 누워계셨던 걸까. 그들 역시 어떤 평온한 호숫가에 앉아서, 자신이 평생 기억해왔던 것을 반추하며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기억을 지워나가고 계셨던 걸까. 

나도 언젠간 어른이 될테고, 죽을 나이가 되면 알츠하이머로 고생할 가능성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겠지. 레이 커즈와일이 말했듯이 갑자기 특이점이 와서, 이런 병을 앓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대가 오지 않는 한, 나 역시 나의 할아버지와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같은 경험을 지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인상깊었던 문구
"사실은 잘 몰라. 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거의 알 수가 없거든. 지금은 희미해져가는 별과 비슷하단다. 내가 거기에 대해서 가르쳐줬던 거 기억하지?"
"별이 희미해지더라도 마지막 빛줄기가 지구에 도착하려면 아주 오래 걸리니까 우리는 한참 뒤에서야 알 수 있다고요."

"선생님께서 어른이 돼서 뭐가 되고 싶은지 쓰라고 하셨어요."
노아가 얘기한다.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먼저 어린아이로 사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썼어요."

3.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3줄 평 
- 기억과 상실에 관한 섬세한 묘사가 인상 깊은 소설 
-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지? 
- 만일 내가 나이 먹어 기억이 껌뻑껌뻑 해질 때,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과연 어떨지 이 책을 통해 간접경험해보았다.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7. 9. 23:49
영화 '옥자'를 보며 들었던 생각 
일주일에 보통 몇 번 정도 고기를 드시나요? 일주일에 3번? 혹은 5번? 나 같은 경우는 보통 일주일에 7번 정도 고기를 섭취하는 것 같다. 가끔 고기를 먹는다는 말을 '구워먹는다'라는 말로만 쓰는 친구도 있다.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어야 제대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7번을 그렇게 먹는다는 게 애시당초 가능한 일인가?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정말이지 매일 같이 술자리에 끌려다니면서 싸구려 생고기를 매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언젠가 한 번은 일주일 내내 고기를 구워먹어서 몸에서 고기 구운내가 빠져나가지 않고 찐득하게 달라붙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평소에 고기를 먹는다는 건 아주 평범한 경우이다. 소시지 볶음, 동그랑땡, 제육볶음, 중국식 볶음밥이나 짜장(고기가 채 썰어 들어있다), 만두, 김밥 같은 흔한 요리들을 먹을 때 난 항상 고기를 먹는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일부러 채식주의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채식주의가 되어서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포함되지 않은 요리를 먹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이런 고기를 빠져나가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애시당초 고기를 이용한 기름이나 조미료가 상당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로로 고기를 섭취하는 경우도 참 많다. 우리가 라면을 끓여 먹기만 해도 고기 성분을 섭취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난 주에 영화 '옥자'를 봤다. 박찬욱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었는지는 과단하기 어려웠다. 감상자마다 각자 다른 포인트가 있고, 다양한 메시지를 뽑아낼 수 있도록 잘 조정되어 있었으니까. 내가 영화 전문가가 아니라 함부로 얘기하긴 힘들지만, 아마 동물공장과 식용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그 영화가 담고 있던 메시지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GMO 식품에 대한 비판 역시 그 영화가 담고 있던 메시지 중 하나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가장 흔히 먹고 있는 식재료가 돼지고기였고, 이 돼지고기의 대부분은 실제 영화에 묘사된 것과 별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사육되고, 가공되어, 내 주변에 배송된다. 그것이 돼지라는 한 개체에게는 끔찍한 현실이지만, 나 역시 그것을 먹고 살기 어려운 방식으로 환경이 조정되어 있다. 내가 그것을 감히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기에, 영화에선 내가 갖고 있던 예감을 잘 만들어진 이야기로 전달해준 느낌이었다. 

이번 주엔 영화 '옥자'와 대치점에 서있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우리가 먹고 있는 돼지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소개한 다큐였다. 다큐가 소개하는 소재들은 꽤 흥미로웠다. 식물성 소재로 고기 맛을 내는 임파서블 버거, 식용 곤충, 줄기세포로 배양한 배양육, 식물이 적절한 상태로 자랄 수 있도록 구성한 식물공장같은 개념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물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편집을 활용한 유전자 조작에 대한 연구도 소개되어 있었고, 줄기세포를 활용한 배양육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 고기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안전하다'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흥미로운 건 이 다큐에서 소개되는 대부분의 연구들이 '옥자'의 방향과 대치되어 있었다는 것. 식용 곤충, 배양육, 식물성 고기 등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연구의 개발 의도가 현대 사회의 육류 생산 및 공급 방식을 대체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내내 들었던 불편함을 다큐를 보며 깨달았다.

'GMO라던가, 미래 먹거리로 장사하려는 사람들이 내놓을 수 있는 답이 고작 저것밖에 안될까? 저런 방식보단 더 세련된 방식은 없었을까? 그들이 정말로 악인일까? 설령 그들이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취할 행동이 과연 저런 방향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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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국내소설2017. 7. 8. 23:52

저자 : 편혜영
출판사 : (주) 창비
초판 1쇄 발행 : 2013년 8월 12일 
전자책 발행 : 2013년 8월 26일 

1. 비밀에 관하여 
그 무엇보다 어두운 단편집이었다. 첫 문단을 읽을 때부터 짐작했다. 

벨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부엌에서 뒷물을 하고 있었다. 사타구니에서 나오는 것은 누런 오줌뿐이었지만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아랫도리는 언제나 눅진했다. 그녀는 물기 묻은 아랫도리를 닦지 못한 채 엎드려서 회전의자를 가슴 아래 깔았다. 다리 통증이 심해진 뒤로 바퀴 달린 의자를 이용해 조금씩 움직였다. 의자를 깔고 몸을 길게 뉘어 얼음을 지치듯 손으로 바닥을 밀고 나가는 식이었다. 

사람들이 처하게 된 어두운 현실을 다룬 책이나 영화는 많았지만, 그네들이 생각하는 심상의 어둠까지 표현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생각하기 쉽고, 희망 속에서 밝음을 다시 찾는다. 이 책이 묘하게 느껴지는 건 단편 속 인물 면면이 보이는 어둠이다.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 역시 그네들 못지 않게 어둡지만, 그들이 취하는 태도는 사뭇 미묘하다. 

깊은 지하의 전철역으로 들어가며 그는 다짐했다. 누구에게도 오늘 밤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리라고. 그를 지목한 비밀의 문장에 대해, 그를 아이에게 내몬 양심의 충동에 대해 말이다. 낯선 성기의 감각을 잊지 않고 있는 아이와 그 아이가 들어간 연립주택의 어둠, 그가 돌아나온 좁은 골목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을 내내 비밀로 품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만이 그리고 좁은 골목과 어두운 밤만이 노인이 될 때까지 비밀을 기억할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어둠과 꽤나 어울린다. 홀로 튀는 형상을 취하지도 않고, 어둠을 박차고 나오려고 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들은 그 풍경 속에서 자연스레 어울린다. 

개인적인 감상으론 이런 느낌 때문에 책을 읽기가 정말 어려웠다. 힘들었다. 책을 감상하면서 인물과 환경에 푹 빠져 지내게 되는데, 나 역시 어둠 속에 동화될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나와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보다는 나 역시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들었다. 

소문 속에서 진심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생각과는 다른 것이 되는지, 간절한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일단 말이 퍼지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얘기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어둠의 느낌과 함께 느낀 것은 바둥거리는 생각들이 갖고 있는 한계였다.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어둠은 더 강한 힘으로 몰아친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더 깊은 바닥으로 흡수된다. 그것이 다가오는 방식은 유쾌하거나 참혹하지 않다. 단지 무시되는 어둠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 잘 다뤄졌다. 멋진 글이고 매혹적인 글이지만, 내 스스로가 건강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감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글이다. 정말이지 마약같은 소설이었다. 

2. ‘밤이 지나간다 ' 3줄 평 
- 올해 읽어본 책 중에 가장 우울하다. 
- 읽을 땐 젤리에 걸린 벌레처럼 읽히지 않는데, 책을 덮고 있을 땐 다시 읽고 싶다. 
- 우울함의 한 축은 현실감에서 비롯되었다. 내 주변 사람을 다룬 이야기처럼 와닿는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