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7. 12. 23:42

저자 : 김민철
출판사 : 북라이프
초판 1쇄 발행 : 2015년 7월 10일 

1. 취향저격 
6년 전, 난 블로그를 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책 블로그'와는 주제가 달랐다. 그 땐 '광고 블로그'였다. 한 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광고들을 보고 분석하는 일을 하곤 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광고는 TBWA의 박웅현이란 광고인이 만든 광고였다. '진심이 짓는다' 시리즈나 'See the Unseen' 같은 광고를 즐겨보았다. 고작 15초짜리 영상을 보면서 '즐겨보았다'을 쓰는 건 좀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영상을 10번이고 100번이고 돌려보면서 감상했으니, 감히 '즐겨보았다'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마 그 때 내가 처음으로 김민철이라는 카피라이터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TBWA에서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를 맞고 있던 박웅현이 팀원으로 데리고 일하던 사람이 김민철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기억으로 난 이 책을 골랐다. 광고를 매력적으로 쓰는 사람이니, 아마 그가 쓰는 책도 어떤 매력을 담고 있지 않을까? 

역시나. 취향저격이었다.

2. 가슴을 뛰게 하는 구절들. 
이 책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싶지 않다. 단지,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슴 뛰는 구절들을 함께 나누고 싶고, 기록하고 싶다. 내게 책에 밑줄 그은 수많은 구절 중에, 가장 예쁜 것만 모아서 소개한다.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은 어쩌면 나의 철저한 '오독'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안 듣고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내 세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빵집 아들의 운명은 도넛이다. 그렇기에 늘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김연수 작가의 깨달음이었다. 
<청춘의 문장들>에서 그 구절을 읽는 순간 갑자기 나는 나의 운명을 깨달았다. 나는 검은 건반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늘 어두운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마침내, 팀장님에게 말하기로 했다. 가을밤이었다. 비가 오는 가을밤이었다. 회사 옆 가로수길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빗방울에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술집 야외 테라스에 앉아 팀장님에게 말했다. 그만두겠다고. 처음 이 팀에 올 때 말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오래 일하지는 못할 거라고, 저는 그만두고 프랑스에 갈 생각이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 순간이 되었다고 팀장님에게 말했다. 팀장님은 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민철아, 여기가 지중해야. 봐봐. 여기가 지중해야. 다른 곳에 지중해가 있는 게 아니야."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처음부터 의도는 없었다. 의도가 있었다면 이토록 성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늘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멀리서도 보였고, 다가갈수록 가슴이 뛰었다. 

나는 내가 강백호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강백호 같은 농구 천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구는 해본 적이 없지만, 점프력이 좋고, 공을 향한 집념이 강하고, 끈기도 있고, 지구력도 있고, 승부욕도 있고, 서태웅을 향한 질투도 강하고, 소연이에 대한 사랑도 강해서 농구를 한번 시작만 하면 잘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사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3. '모든 요일의 기록' 3줄 평 
- 책 군데군데 보물처럼 숨겨진 문구들이 많아서 참 좋았다. 
- 김민철 작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피 문구를 쓴 카피라이터다. 그래서일까, 책 속 문구들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 나도 이 사람처럼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