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7. 6. 23:46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 옮긴이 : 권남희
출판사 : 비채
초판 1쇄 인쇄 : 2013년 5월 10일 

1. 인상깊었던 구절과 느낌. 

문득 생각났는데 세상에는 종종 '후렴이 없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얼핏 옳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전개에 깊이가 없다고 할까, 미로 속으로 들어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 그런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누면 여지없이 녹초가 되고 피로도 의외로 오래간다. 

하루키가 쓴 후렴이란 표현이 참 묘하다. 정말 그런가? 세상에 '후렴이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을 신기하다 여기는 걸 보면 주변 많은 사람들은 '후렴이 있는 사람'이란 거 아닌가. 

후렴이란 게 뭘까. 그 사람이 항상 보여주는 반복된 행동 패턴? 그 사람이 평소 갖고 있으며 바뀌지 않는 어떤 신념이나 가치관? 그 사람의 삶의 목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시절에 난 이 '후렴'이란 부분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 친구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로 각자의 후렴이 있었으니까. 이 친구는 이럴 때 꼭 이렇게 행동할 것 같다거나 하는 것. 평소에 이 친구를 볼 때마다 '그래, 이 친구는 원래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같은 것 말이다. 당시 난 나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난 후렴이 없는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나만이 갖고 있는 어떤 특성이나 매력 같은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뭔지 모르게 생각도 쉽게 바뀌고 행동도 쉽게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름 후렴 있는 척을 하다보니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난 후렴 부분이 맹하게 빠진 느낌이 든다.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맛있다. "당연하잖아, 그게 어째서 신기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왜냐하면 이탈리아의 이웃 나라들에서 먹는 파스타는 하나같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기만 하면 파스타가 갑자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어진다. 국경이란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로 돌아오면 그때마다 '오, 이탈리아는 파스타가 맛있구나'하고 새삼 절감한다. 생각건대, 그런 '새삼 절감하는' 한 가지 한 가지가 모여 우리 인생의 골격을 형성해가는 것 같다. 

하루키의 이 주장은 내가 경험해보지 않아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본토로 가본 경험이 없고, 프랑스나 몰타 같은 곳에서 먹은 파스타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은 최악이었다.) 이탈리아에 가서 파스타를 먹었을 때 하루키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설렌다. 

어떤 것을 절감하는 것이 모여 인생의 골격이 된다는 표현도 참 재밌다. 여기서 하루키가 말하는 '인생'이라는 건 어떤 '인생'을 얘기하는 걸까. 과거, 현재, 미래 3단계로 나눠서 본다면 보통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걸까?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과거일테지.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감상과 인상들은 결국 어떤 '절감'이 모인 것일테고, 그것을 모아서 본다면 인생이라고 느낄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이게 현재의 인생이나 미래의 인생까지도 이런 '절감'이 결정한다고 한다면 흥미롭다. 절감하는 순간, 그것이 가치관이나 사고관으로 모이게 될 테고, 이를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일까. 

서른이 되기 직전에 아무런 맥락도 없이 문득 '소설을 쓰자'는 생각이 들어 쓴 것이 공교롭게 한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내게는 습작이라는 것이 없다. 처음부터 전부 그대로 '상품'이 되었다. 그때는 '뭐 그런 거지'하고 마음 편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뻔뻔스러운 일이었다. 

맞습니다. 하루키씨. 당신 참 뻔뻔하네요. 

2.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3줄 평 
- 하루키는 생각하건데 소설가라기보단 음악평론가같다. 이런 사람이 유명한 소설가가 되다니. 
- 하루키 수필은 언제나 옳다. 참 좋다. 
- 당신 말이 맞아요. 하루키 씨, 당신 참 뻔뻔하네요.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