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6. 27. 23:36

저자 : 유계영
출판사 : (주)민음사
초판 1쇄 발행 : 2015년 10월 12일 
전자책 발행 : 2015년 11월 27일 

온갖 것들의 낮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하나의 의문으로 

빨강에서 검정까지 
경사면에서 묘지까지
항문에서 시작해 입술까지를 
공원이라 불렀다 

바람이 불자 화분이 넘어졌다
화분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제 탔던 남자를 오늘도 탔다 
내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제 먹어 치운 빵을 태양이 등에 업고 
나는 태양을 등에 업고
너는 나를 등에 업고 

비둘기가 아주 잠깐 날아올랐지만

층층이 흔들렸다 
공원의 한낮이 우르르 시작되었다 

'온갖 것들의 낮'를 읽은 감상 
가끔 농담하듯 이런 말을 한다. 내가 8살이던 시절. 그 때가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는데,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 어른이 되어버렸다. 

토익 공부를 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현재시제란 말을 굳이 배우긴 한다만, 사람들이 '현재'라는 말을 쉽게도 쓰는구나. 대체 그게 어디에 있는데? 벽시계에 걸려 있는 초침을 미세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아주 조금 한 칸 움직이는 상상을 했다. 그것이 현재인가? 지금 이 순간도 현재같기도 하고, 8살 내가 친구와 함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벽을 차대던 것이 현재 같기도 하다.

이번엔 이런 상상을 한다. 손가락에 상처가 난다. 상처에 딱지가 오른다. 그 딱지를 뗀다. 희안하다. 딱지를 떼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딱지라는 조각과 나머지 신체라는 조각으로 분절된다. 어디 딱지 뿐이겠는가? 매일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고, 피부 각질은 조금씩 벗겨지며, 손톱과 발톱은 매일 자란다. 나는 매일 분리되며 살아간다. 죽은 피부일 뿐이라고? 가끔은 살아있는 피부를 벗기는 경우도 있다. 상처를 잘못 건드린 경우다. 

그럼 대체 나라는 존재의 위치는 어디까지인가? 몸통과 주요 장기까지인가? 뇌까지? 대뇌피질까지? 나라는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 너를 구분할 수 있는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건가? 아마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본 철학자가 세상 어딘가 있겠지? 단지 난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니 대체 누가 이런 고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와 내 주변의 온갖 것들이 어떤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상호작용이란 말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가정 하에 쓰이는 말이니,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이 같다는 가정 하에서는 그것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애매모호한 상태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다 같은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시를 읽었다. 
나 역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라고 질문하고 싶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