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1. 5. 23:47
통조림
통조림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통조림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안에 꾸겨지고야 마는 내용물이 싫었다.  
내가 걷는 길은 컨베이어 벨트 같았고, 길 끝에는 멋드러진 분쇄기가 서있었다. 
의지라는 걸 갖게 되는 건 기적이지만, 
그 의지를 갖고 길에서 벗어나는 건 행운이다. 
흔들 흔들 흔들 거리는 움직임이 안락하기도 하고, 멀미도 거의 안나.  
바닥에 떨어지지마, 바닥에도 별거 없어. 
그래봤자 그것도 또 컨베이어겠다만.  
그래봤자 그것도 원하던 거겠다만. 
그래봤자 그곳에 추락하겠다만. 
그래봤자 그것은 통조림이겠다만. 
그래봤자 그놈은 통조림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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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시, 에세이2018. 1. 4. 23:51
오픈 북
대화를 읽으면 관측되는 기후가 있다. 소나기를 맞지 않았는데, 춥지? 하며 건네는 찻잔 속의 소용돌이, 침묵은 희미해진다. 펼쳐 놓은 표정에 네가 없어 틀린 예보, 체온에 깜박 속을 뻔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두꺼워진다. 영영 보지 않을 책처럼, 또 만나자는 약속처럼 시작과 끝의 모든 구절은 반복된다. 꿈에서 접질린 손목으로 밥을 푸고 꼭꼭 씹어 먹으며 유예하는 슬픔은 자꾸 건강해진다. 미워하는 사람을 가둔 방마다 흉측한 내가 있고, 그런 나를 부르는 너의 친밀한 목소리가 헐겁다. 시합이 되어 버린 감정 때문에 길을 잃은 집은 고작 마음 한 칸, 한 칸의 한편에 배치된 책장, 책장에 기울어진 두꺼운 책, 그 속엔 온통 잃어버린 사람들로 쓰인 글이 있다. 날씨와 위로로 대신할 수 없는 구절마다 우리는 영영 찾지 못한 오탈자처럼 틀리게 기록되어 있다. 밑줄만이 우리를 덧칠하는 
- 서윤후,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中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는 단어가 참 어려웠다. 친구라는 단어에 있어 내가 생각했던 예보가 맞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멀어진 시간 속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고달픈 관계들이 있긴 하다만, 그런 것들이 내게 어렸을 때만큼의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굳이 두꺼울 것 없이 멀어지면 되는 것이 지금이라면, 그 당시엔 다 벗어던지고 마주해야 하는 일상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양 살아가고 싶었지만, 매일 생각할 거리로 넘쳐났다.

물론 그 때 생각한 것 중에 쓸모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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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8. 1. 3. 23:53
어려움이란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 어려움이 아닌가 싶다. 제3자의 입장이 되고나면 안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문제의 주체가 되면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여러 상황 변수들이 생기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신경써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이 많아진다. 바깥 상황도 힘든데 안으로는 더 힘들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걱정으로 비난이 많아진다. 

대학 시절, 취업 준비할 때 딱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소극적이었고, 지나치게 걱정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나 생각에 대해서 잘 정리해서 여러 곳에 제안해볼 수 있었음에도 '나를 싫어하면 어떡할까?' 라던가 '한 번 제출하면 다시는 제출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등의 걱정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날 평가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나 혼자 세상에 뒤쳐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었다. 

회사에 들어와 보니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라는 조직은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더 걱정이 많다. 아니, 오히려 여러 명이라서 생각은 많은데 적절한 행동과 상황판단이 나서지 못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부터 우선 설정하느라 한참 시간을 끈다. 게다가 회사엔 데이터가 많다. 데이터가 많고 공부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다보니 너무나 뻔한 답을 두고 한참을 고민한다. 

그럼 이런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는 게 좋을까? 

내 생각엔 쉽고 단순한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싶다. 열심히 나아갈 땐 디테일한 방향으로 파고드는 것이 좋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선 언제나 큼직큼직하고 근본적인 곳으로 생각의 방향을 두면 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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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