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8. 1. 8. 23:50

(이 책은 사실 '페미니즘 소설 단편집'입니다. 여러 작가들의 단편들이 실렸는데, 저는 이 단편들 중 제가 가장 아끼는 작가, 최은영 작가의 단편을 다뤄서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저자 : 최은영 
출판사 : 다산북스
전자책 발행 : 2017년 11월 14일 

1.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단편을 읽고 어머니께 전화 드렸다. 

괜스레 마음이 벅차올라서 어머니께 뭐라도 얘기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이 되어서였다. 

흔한 얘기였다. 소설 한 켠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나고 자라면서 매일 봐왔던 일상이고, 내가 매일 들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서울에서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네 집으로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나의 할머니의 집에 들어온 것이다. 집의 주인은 할머니였다. 아버지의 월급은 모두 할머니에게로 갔고, 몇 년 간 그 돈을 갖다 드렸는데 시간이 흘러 그 돈은 모두 사라졌다. 

아버지가 직장을 따라 제주도로 가면서 어머니의 삶은 나아졌다. 아니, 그것이 엄밀히 이야기해서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친구는 모두 서울에 있었고, 그녀의 커리어는 모두 끊겼으며, 늦은 저녁 남편을 기다리며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검소했다. 아버지 역시 끔찍하리만치 검소하신 분이셨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검소함을 자랑으로 받아들일만큼 검소했다. 백화점에 가서 내 옷과 아버지의 옷을 고르는 일이 있을 때에도 본인 옷은 기어코 거절하곤 했는데, 난 철이 없어서 그게 문제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명절이면 항상 가장 먼저 올라와서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시곤 했는데, 첫 며느리라는 것이 대체 무슨 죄인지 둘째와 셋째 어머니는 항상 뒤늦게 집에 오시다가 최근 들어서는 아예 오시질 않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 대해 난 일종의 적개심마저 생겨버렸다. 마냥 적개심만 갖는 건 무리인지라 난 어머니에게 왜 혼자 그렇게 희생하면서 사냐고 대들곤 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본인이 챙기지 않으면 할머니가 서운해하시고 힘드시다고 말하며 나를 나무라셨다. 요즘엔 어머니를 따라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곤 하지만, 난 그렇게 정성을 쏟는 어머니에 대해 일종의 연민을 넘어서서 화를 내곤 했다. 

사실 어머니만 그런 건 아니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당신의 평화>에 등장한 '선영'이라는 인물을 보며 나의 친척 형의 형수님을 떠올렸다. 친척 형과 대학 CC로 결혼한 그녀는 서울대 수의학과 출신의 엘리트이다. 학벌도 뛰어나고, 미모도 훌륭하며, 성품도 뛰어난 그녀는 내가 어디 밖에 나가 쉽게 보기 힘든 멋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도 명절만 되면 며느리의 가면을 쓰고 일을 하곤 했다. 집안 어른들은 그녀의 정숙함을 칭찬했고, 며느리가 부엌에서 음식을 나르는 모습을 훌륭하다고 말했다. 

남자로서, 아들로서, 손자로서 난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만큼 기분 더러운 일도 없었다. 

어릴 땐 그냥 여자가 일을 하고 남자가 거실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고등학생 쯤 되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점점 현실이 불합리하다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내게 '장손, 장손'하시면서 칭찬하는 걸 좋아하셨는데, 그런 류의 칭찬이라고 하는 건 손녀가 하면 너무나 당연하고 손자가 하면 무척 훌륭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내게는 반감이 엄청났다. 할머니와 가족들이 남자 형제들에게 칭찬을 할 때면 그게 마치 비웃는 것처럼 들리곤 했는데, 아마 여자 형제들이 그걸 들으며 실제로 비웃었을 거라 확신한다. 

이처럼 내가 기억하는 가족은 사랑과 함께 끔찍함을 가득담은 어떤 애증의 것이었다. 극단적인 성격의 남자가 등장해서 순종적인 여자를 괴롭히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벌이는 너무나 평범한 끔찍함이었다. 

최은영의 소설에는 이런 가족 간의 끔찍함이 놀라운 관찰력으로 포착되어 있는데, 이런 면이 내게는 무척 공감되고 와닿았다.  

"편히 있어요." 유진은 부엌까지 온 선영에게 말했다. 
"차라리 뭐라도 나르는 게 편할 것 같아요." 선영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요. 선영은 유진에게 눈으로 말했다. 

이전에 읽었던 <쇼코의 미소>라던가, <그 여름> 같은 단편들에서 느꼈던 것처럼, 최은영이라는 작가는 어떤 화해의 속성을 가진 작가 아닌가 싶다. 그녀의 문체는 담담하면서도 시간을 쓰다듬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어떤 위로 혹은 치유의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그런 느낌 때문에 나는 자주 울곤 했다. <쇼코의 미소> 같은 경우 난 3번을 봤는데, 3번 모두 완전히 울어버렸다. 사람을 울리는 건 그녀의 소설이 갖고 있는 어떤 전형성 같은 것인데, 이번 소설 <당신의 평화>에서도 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울음을 삼켰다. 

남자로서 내가 감히 말할 분야가 아닐 지도 모르지만, 난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과거를 치유하고,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성숙해지는 것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이 소설은 무척 완성도 높은 소설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2. '당신의 평화' 3줄 평 
- 또 울었다. 최은영이라는 작가는 사람 울리는데 재주가 있다. 
- 이 단편을 읽고 어머니께 전화드렸다. 그녀를 더 이해하지 못함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 공격과 분노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화해와 치유의 페미니즘. 


Posted by 스케치*
독서/시, 에세이2018. 1. 7. 23:44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집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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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8. 1. 6. 23:51
내가 살아온 풍경 
같은 단어를 말하고 있는데도, 그 단어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 참 다르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와 같은 성별, 같은 나이, 같은 학교, 같은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억하는 단어의 풍경과 내가 기억하는 단어의 풍경이 다르다. 학교, 가족, 사회, 친구, 놀이, 길거리 등등 너무나 뻔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단어를 둘러 싸고 그와 내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음에 조금은 놀랐다. 

그래서 그처럼 다른 풍경 속에 그 언어를 두고 있을 경우엔, 같은 말을 해도 서로에겐 다르게 들리는가 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건 그런 이유인가 보다. 

그래서 조금은 신기하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쓰는 언어가 나와 비슷하다고 느낄 때. 그들이 진심으로 내가 생각하는 그 단어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긴 한 걸까. 그들이 나와 같은 언어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기는 한 걸까. 어쩌면 우리는 좋은 의미에서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 1987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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