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30. 23:51
나의 범주 
관념론을 배제하고, 내가 갖고 있는 신체가 '나'라는 존재라는 것이 증명 가능하다고 한다면, 나라는 신체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내 몸에선 1초에도 엄청난 수의 각질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가닥의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고, 매일 새로 자라나는 털과 손톱 발톱을 잘라나간다. 라식 수술을 한다고 병원에 가면 나의 가장 연약하면서용감하게 바깥으로 돌출된 부위마저 잘라버린다. 나라는 존재가 잘려져 나간 것에 대한 슬픔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신경세포의 자극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당한 시간 동안 아파한다. 

만일 내가 내 손이나 발을 잘라버린다면 어떨까? 내 손이나 발은 손톱이나 발톱과는 달리 실제로 내가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는 부분이다. 평소 살아가면서 내가 손이나 발을 보면서 나라는 존재와 함께 공존 혹은 공생하는 부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몸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정확히는 뇌와 연결되는 신경이 완전히 끊겨버렸을 떄) 나는 내 손과 발을 보며 나라는 존재를 의식할 수 있을까? 

내장은 미묘한 부위이다. 얼마 전 '미생물 인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니 미생물이 우리 신체 안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내장 안에서 미생물의 분포와 종류가 어떻느냐에 따라 사람의 뇌가 기능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사람의 성격에까지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미생물은 우리 몸에 들어와 일종의 공생하는 기생물의 형태인 것인데,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미생물의 종류와 분포는 어머니에게서 특히 많이 전달받고, 또한 우리가 살아오며 먹는 음식이나 노출되는 환경에 따라 변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우리의 미생물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예를 들어, 양파나 마늘 등)을 먹고, 유익한 미생물들이 잘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환경(깨끗한 자연 환경)에서 자란다면 신체 미생물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이것이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생물도 나라는 존재에 포함될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이나, 나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나라는 존재와 많은 것을 공유한다. 가끔 내가 혼자 독창적으로 생각해냈다고 여겼던 것이 실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놀라움 같은 것이 있다. 알게 모르게 내가 갖는 생각이나 생활 패턴은 주변에서 영향을 받으며, 나의 생활 양식을 결정한다. 내가 비록 거부할지 모르겠지만, 내 삶의 목표에까지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나라는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정확히는 나의 뇌와 척수까지 이르는 핵심적인 신경세포들을 두고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신체 부위까지 나인가? 아니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신체 부위까지 나인가? 아니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없어지고 부서지는 부위까지 나인가? 아니면 내 안에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미생물까지도 나인가? 아니면 내 밖에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주변 사람들인가? 아니면 내 밖에서 아주 간접적이고 서서히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과 환경들까지인가? 애초에, 물질적인 기준으로 나의 범주를 잡는 것이 올바른 기준인가?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