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9. 9. 22:30
난분분하다 
안 가 본 나라엘 가 보면 행복하다지만, 많이 보는 만큼 인생은 난분분(亂紛紛)할 뿐이다. 보고 싶다는 열망은 얼마나 또 굴욕인가. 굴욕은 또 얼마나 지독한 병변인가. 내 것도 아닌 걸, 언젠가는 도려내야 할 텐데. 보려고 하지 말라. 보려고 하지 말라. 넘어져 있는 부처의 얼굴을 꼭 보고 말아야 하나. 제발 지워지고 묻혀진 건 그냥 놔두라. 

가장 많이 본 사람은 가장 불행하다. 내 앞에 있는 것만 보는 것도 단내 나는 일인데. 땅속에 있는 전설을 보는 자들은 무모하다. 눈으로 보아서 범하는 병. 

끌려 나온 물고기가 눈이 튀어나온다. 

- 허연 (시집 나쁜 소년이 서있다 中) -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9. 8. 23:42
무선 이어폰이 굳이 필요한가? 
아이폰을 구매할 때 기본으로 주는 번들 이어폰은 '번들 답게' 내구성이 약하다. 단선되어 소리가 끊기는 경우도 종종 있고, 잭 부분을 주머니 속에 잘못 넣었다가 구부러져서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아예 스피커 자체가 지직 거리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이 번들 이어폰에서 벗어나 다른 이어폰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귀에 꽂히는 그 특유의 감촉이 너무나 편해서 이것 외의 이어폰은 귀에 거슬린다는 느낌 때문이다. 

애플사에서 이어팟을 선보인 이래로 무선 이어폰 시장은 그야말로 붐이 되었다. 블루투스도 버전이 4.0을 넘어가는 즈음부터 일반적인 청음으론 큰 구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어팟이 처음 나왔을 때는 다들 비웃었다. 줄없이 애매한 형태라고 비웃었고, 우스꽝스러운 형태를 부끄럽다 여겼지만,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주변에서 새로운 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내 주변에서도 이어팟을 쓰는 사람이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회사 같은 팀 사람 중에 이어팟을 쓰는 사람만 벌써 3명이 넘는다. 이어팟을 쓰지 않아도 '준'무선 이어폰이라 할 수 있는 목걸이형 이어폰(예 : LG 톤플러스)을 쓰는 사람도 4명이나 된다. 4명이 모두 아저씨인지라 내게는 어쩐지 목걸이형 이어폰은 모두 아재라는 느낌이 되었지만, 어딘지 그들이 산 물건을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마침 최근에 쓰고 있는 번들 이어폰이 망가졌다. 아이폰 4s부터 아이폰을 5년 반을 썼는데, 핸드폰 이외에 번들 이어폰만 따로 구매한 것만 10번이 넘을 것 같다. 그 한심한 내구성에 대해 짜증을 느끼면서도, 마찬가지로 그 내구성이 걱정되어 함부로 비싼 물건을 구매하지 못했다. 비싼 이어폰을 구매해봤자 단선되어 버리면 바로 쓰레기가 되어버릴 것이 두려워서였다. 

삼성에서 처음 기어 아이콘X가 나올 때 나도 유심히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실 삼성보다도 전에 킥스타터에서 처음 무선 이어폰이란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처음 그걸 봤을 때는 '신기하긴 한데, 이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게 현실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번 IFA2017에서 나온 여러 이어폰 기기 중에 내가 특히 관심을 두는 건 Sony의 MDR-1000X다. 사람들이 말하길 애플 이어팟의 대항마로 나온 제품이라 한다. 무선 이어폰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구현한다. 노이즈 캔슬링이 이어폰 기술에 있어선 가장 중요한 미래 기술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제품은 꽤 기대하는 바가 크다. 노이즈 캔슬링은 단순히 바깥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차단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만 걸러서 들려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앉아 있을 땐 노이즈캔슬링이 되고, 내가 움직일 땐 자동으로 외부의 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요즘 말하는 스마트 알고리즘이 적용된 거 아닌가. 

10월 초에 일본에 출시된다고 하니, 한국엔 아마 11월 즈음해서 나오겠지. 빨리 출시되길 손꼽아 기다리긴 하는데, 그 전에 내가 쓰는 유선 이어폰이 먼저 망가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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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9. 7. 23:52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삶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어떤 중국인이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이렇게 적었다.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삶이란 진보를 의미한다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가 독재에 대항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내용이다보니,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상업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인 입장에선 부럽고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에게 6.10 민주항쟁이라던가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다면 중국인에겐 천안문 사태가 밝혀져야 할 현대사일테니.

이 문장을 처음 듣고 몇 번 다른 문장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해봤는데, 말끔하게 원래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 아마 '돌아보다'라는 말과 '할 수 있다'라는 말이 묘하게 섞인 덕분이 아닐까. 돌아본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발을 디딛고 있는 곳이 현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에 있으면서도 내가 머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는 건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 방향에서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방향인지 검토하고 숙고하기 위해서 가끔씩 과거를 돌아본다.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에 종속된다거나, 혹은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말과는 대조된 해석이 아닌가 싶다.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의무에서 벗어난 자유를 의미한다. 즉, 자유의지에 따라 목적을 향해 걸어가고는 있지만, 얼마든지 내 과거 행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자유를 지녔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런 해석 덕에 묘하게 문장이 와닿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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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