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9. 3. 23:36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 / 옮긴이 : 권영주 
출판사 : (주)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 2013년 11월 15일 (일본 원작 발행 : 2002년 7월) 
전자책 발행 : 2017년 8월 28일 

1. 추리소설의 탈을 쓴 성장소설
바로 전 시리즈였던 '빙과'에 비해, 이번 편에선 주인공 호레키의 태도가 어딘지 다르다. 이전 소설에선 소설 내내 성격이 변하지 않는 전형적인 캐릭터였다. 이번 편에선 그런 부분이 전면 수정된다. 호레키는 소설 초반부터 그런 면이 흔들린다. 아마, 그런 면을 드러내는 장면이 사토시와의 대화가 아닌가 싶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십오 년간 후쿠베 사토시 노릇을 해 왔지만, 보아하니 이 몸에 천부의 재질은 없는 것 같거든. 대기만성이란 말에 희망을 걸어 보긴 하지만 이렇다 할 전문 분야도 없으니 그쪽으로도 가망이 영 없어 보이고."
"뭐, 천재는 천재대로 아무리 원해도 평범한 인생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지."
"평범한 인생에 매력을 느끼는 거야, 호타로? 너라면 그러지도 모르겠네."
그러더니 사토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하지만 과연 네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전 시리즈 '빙과'에서 스스로를 회색이라 할만큼 무신경한 태도를 보였던 호레키는 자신 주변에 있는 다양한 색의 인물들을 향해 이채로운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관찰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격이라던가, 본인만의 특색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타인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그저 운일 뿐이야'라고 말하거나, '그렇지 않다'라는 식으로 회피하지만,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스스로를 자각하는 면이 흥미롭게 관찰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자각해야 해. 안 그러면...... 보고 있는 쪽이 바보 같아져."

(스포이지만) 놀랍게도 호레키는 추리에 실패한다. 그럴싸한 추리를 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 추리는 엄밀히 말해서 진짜 정답이 아니었다. 진짜 정답이라 할만한 내용은 호레키가 만들어낸 추리에 비해 오히려 시시하다 싶을 정도의 내용이었다. 추리가 틀리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만, 굳이 왜 호레키는 추리에 실패해야 했을까? 

그건 호레키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빛내기 위한 일종의 장치와 같았다. 이번 소설에서 호레키가 진지하게 추리를 진행할 때 호레키 주변에선 그의 친구들이 각자의 일 때문에 자리를 뜬다. 지탄다, 사토시, 이바라가 모두 없다. 호레키는 혼자 힘으로 추리를 진행한다. 이 점이 독으로 작용했다. 호레키의 추리를 들은 나머지 친구들은 그의 추리에서 부족함을 발견한다. 이전 시리즈에서 호레키가 이뤄낸 추리가 주인공 홀로 이뤄낸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이번 소설에서의 실수는 친구들의 부재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호레키는 성장한다. 내면 안에서 타인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에 따라 조종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흥미를 갖고 해결할 마음을 갖는다. 다른 한 편으로는 본인이 의지를 갖고 움직이더라도 혼자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 때문일까. 호레키를 가리키는 타로 카드의 점궤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힘(STRENGTH)
내면의 힘, 투지, 유대를 나타낸다. 

2. '바보 엔드 크레디트' 3줄 평 
- 이 소설에서 '완벽한 탐정'이란 클리셰가 깨졌다는게 마음에 든다. 거기에 한 인간의 성장과 의지가 스몄다. 
- 전 시리즈인 빙과보다 좀 더 본격적인 미스테리란 느낌이 든다. 
- 반전이 2번 있던 것 같은데, 사실 좀 허망하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9. 2. 21:00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 / 옮긴이 : 권영주 
출판사 : (주)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 2013년 11월 15일 (일본 원작 발행 : 2001년 10월)
전자책 발행 : 2017년 8월 28일 

1. 생각하는 인간 
요즘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생각하는 화두는 '행동하는 인간'과 '생각하는 인간'이다. 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많다. 3~5명 정도의 작은 벤처회사도 있지만, 대기업의 경우엔 천 명 혹은 만 명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한다. 디자인팀에서는 디자인을 하고, 재무팀에서는 재무를 관리하고, 개발팀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영업팀에서는 영업을 맡는다. 그런데 최근에 이 많은 사람들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가 행동하는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행동과 생각이 서로 MECE하게 분리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가지는 서로 미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디자인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라,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행동과 생각이 분리되는 이유는, 회사라는 환경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자인을 하고 있더라도, 해당 디자인이 제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지, 그리고 이 디자인이 고객에게 전달될 때 어떤 식으로 소비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고민은 실제로 내재화 하여 진행하기 어렵다. 내 생각을 반영하기는 커녕,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시키는대로 처리하는 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서 의미있는 결과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행동이고, 이 행동을 온전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비록 나의 행동의 발원점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 할지라도, 이 생각을 구현하는 행동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밤샘근무라던가 주말근무 같은 일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생각'이라는 행위는 일종의 사치가 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선 행동으로 인해 소모되는 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 데이터를 만들기보다는 데이터를 전달받아 그 안에서 의미있는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이 생각이다. 완성된 가설은 '기획서'라는 이름으로 회사 안에서 검증 받게 되고, 상위 직급자의 결제를 받아낸 이후 회사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사실, 기획은 소수가 할 수밖에 없고, 회사 안의 대다수는 행동하는 것에 최적화된다. 

2. '빙과'에서 읽은 '생각하는 인간' 
이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빙과를 읽어서인지 이 소설이 단순히 학원추리물로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전형적인 생각하는 인간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본인 스스로를 생각하기에 공부도, 스포츠도, 연애 등도 적극적이지 않은 '에너지 절약주의자'이다. 즉, 무리한 에너지를 써서 '행동'하지 않는 자이다. 

주인공의 친구인 사토시는 반대에 위치한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학교 안에서 많은 활동을 한다. 본인 스스로 말하기를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며, 생각하기보다는 행동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점을 표방한다. 

그런데 사실 주인공은 엄밀히 말해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부족한 점이 있다. 본인 스스로는 생각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호기심' 혹은 '동기'다. 모든 생각엔 그 생각을 하기 위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주인공은 본인 스스로를 철저히 '회색'인간이라 부를 정도로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 

이 점을 채워주는 인물이 지탄다라는 여주인공이다. 그의 전형적인 대사 '저, 신경 쓰여요"라는 말 한마디는 오레키를 움직이는 방아쇠이다. 

이 때문인지 주인공과 지탄다는 이상적인 사회 조합을 의미하듯 함께 움직이며, '생각'을 한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던 이 소설의 구조가 다른 어떤 것보다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 자신이 현실에서 쉽게 취하기 어려운 '생각'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3. '빙과' 3줄 평 
- 재밌다. 
- 정보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설을 쌓고 수정하며 정답을 찾는 논증 방식이 매혹적이다. 
-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희생'된 누군가를 찾아서 밝혀낸다는 주제의식이 마음에 든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9. 1. 23:27

저자 : 엘리자 수아 뒤사팽 / 옮긴이 : 이상해 
출판사 : 북레시피
초판 1쇄 발행 : 2016년 11월 30일 

1. 작가의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 정체성 찾기?
소설을 옮긴 이상해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해 보인다. 오독 혹은 작가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읽을 확률이 너무나 높은 책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가까스로 끝까지 읽었으나,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속초가 지나치게 어두운 시골로 묘사된다. 둘째, 주인공이 프랑스 남자 케랑에게 너무나 쉽게 빠져든다. 서양 남자에 대한 근거없는 환상처럼 해석된다. 주인공의 원래 남자친구였던 한국인 준오가 '몸'에만 관심을 가진 가벼운 남자로 묘사되는 것과 비교해보면 서양남자와 동양남자 간의 미묘한 비교 구도가 그려지는데, 상당히 거슬린다. 셋째, 틈만 나면 성형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서양에서 한국을 성형대국이라 취급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소설에 차용한 것 같다. 넷째, 실제 한국인과 달리 북한과의 국경 대립을 두고 우울하게 묘사한다. 한국인의 시선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서양인의 시선이다. 

이 때문에 옮긴이인 이상해 씨가 밝힌 몇 가지 사실은 아래와 같다. 
1) 저자는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와 취리히를 오가며 성장한다. 그녀는 프랑스와 한국이 조화로운 결합이라 여겼으나, 13살 때 한국으로 긴 여행을 하면서 이런 환상이 깨지게 된다. 
2) 소설 <속초에서의 겨울>은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소설이다. 즉, '내가 만일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이라는 상상 하에 시작된 소설이다. 
3) 소설 속 주인공인 프랑스인 '케랑'은 저자의 아버지인 프랑스인을 상징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노르망디 출신이다. 
4) 저자는 이방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소설 속에서 그리고자 했다. 

이런 전제가 깔려있던 탓인지 소설 속의 몇몇 대목들은 대놓고 이런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떤 대목들은 미묘하게 주인공이 등장해서 주제 의식을 던지고 떠난다. 아래와 같은 대목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프랑스 사람이군요."
"노르망디 사람."
내가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곳을 아시오?" 그가 물었다.
"모파상을 읽었거든요......"
그가 내 쪽으로 돌아보았다. 
"모파상의 노르망디는 어땠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름답고...... 약간은 슬펐어요."
"나의 노르망디는 더는 모파상 시절의 노르망디가 아니에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곳은 속초와 같아요." 

혹은 주인공이 아닌 케랑의 목소리를 빌려서, 저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다. 

"언제나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가요.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 이야기를 하죠......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해요.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저절로 그려지는 진행 중의 이야기, 난 그걸 끝내야만 하죠. 그리고 마침내 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면, 이 모든게 다시 시작해요......" 

주제의식은 둘째치고라도, 읽기 참 힘들었다. 특수한 경우에서일지, 내게는 참 익숙한 속초라는 동네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2. '속초에서의 겨울 ' 3줄 평 
- 한국에 대한 이해나 묘사는 매우 불만족스럽다. 전형적인 오해가 눈에 거슬린다. 
- 한국인과 프랑스인 사이에 태어난 저자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자전적 소설 
- 이 짧은 소설을 무려 1주일에 걸쳐 읽었다. 글은 쉬운데 무척 읽기 힘든 소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