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9. 15. 23:54
부정 혹은 긍정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이걸 부정하는 건 너무 쉽다. '새롭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그건 부정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정말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이라면 왜 그것은 진작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넘치고 넘치는데도 아직 세상에서 보편화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새로운 것은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류의 생각이다. 새로운 것을 부정할 방법은 많다. 부족한 기술, 긍정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그것이 가져올 새로운 불편함과 윤리적인 문제들, 어쩌면 새로움이라는 건 단지 인류애를 망가트리고 우리가 생각했던 소중한 과거를 부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새로움을 거부한다. 새로움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쓰는 건 쉽다. 똑똑한 척 하기도 쉽다. 근거는 많다. 인터넷을 찾든 책을 찾든 혹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묻든 그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과거의 것에서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롭다는 걸 긍정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다. <굳이> 긍정하기 위해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조각들을 맞춰나가야 한다. 과학적으로(혹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쓰이는 귀납적 오류로)는 쉽게 새로움의 필요성을 증명할 수 없다. 이미 만들어진 새로움을 즐기는 건 어찌보면 가벼운 일이지만, 그 작은 새로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갖가지 수고가 들어가는데, 이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부정하는 건 쉽고, 긍정하는 건 어렵다. 

이미 경험했던 익숙했던 것은 나도 모르게 호감이 간다. 연예인이 호감이 가는 건 사회적인 실험으로도 증명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반복적으로 마주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주 접하는 일이나 물건들에 대해선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도 호감이 간다. 새로운 것은 익숙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하기 쉽다. 

생각해본다는 건 어쩌면 순수한 의미는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해본다는 말은 단지 이미 머릿속에 떠올라 있는 부정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찾아보겠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긍정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자료를 찾는 건 내 스스로 이미 확신이 있었을 때 가능하다. 애당초 사람이란게 새로운 일에 긍정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의 대부분은 부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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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9. 14. 21:34

저자 : 무라타 사야카 / 옮긴이 : 최고은
출판사 : (주)살림출판사
초판 1쇄 발행 : 2017년 7월 28일 

1. 무라타 사야카. 
한 작가의 작품을 적어도 2권 이상 읽게 되면, 그 작품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작가의 주제 의식 같은 것이 드러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읽었던 파트릭 모디아노도 '기억'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인 정유정 작가의 작품도 '사이코패스, 광기'라는 주제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무라타 사야카 작가 역시 '편의점 인간'이라는 책과 이번에 읽은 '소멸세계' 2가지를 함께 읽고 나니, 이 사람이 파고드는 주제가 '정상 혹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은 어딘지 현실감이 떨어진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작가가 그리는 세상의 형태가 비약이 심하다는 느낌도 들고, 혹은 너무 과장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 작가가 그리는 세상이 판타지 세계라던가, 혹은 SF 공상과학 속의 모습을 그리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핵심 소재, 예를 들어 성생활의 형태 혹은 가족의 형태 혹은 육아의 형태를 미리 짚어놓고, 이걸 완전히 뒤집어 엎으면 어떻게 세상이 돌아갈까. 라는 상상이 그려내는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은 다른 어떤 소설가의 책보다도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진하다. 소설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제의식을 향해 자신의 온 정신을 쏟아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 주인공 코브가 처음 애리어든을 꿈 속 세상에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코브는 애리어든에게 꿈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길 권유한다. 애리어든은 자신이 꿈 속의 생경한 세상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도시를 빠른 속도로 바꿔나간다. 갑자기 강 한가운데에 다리를 만들고, 도로 위에 육교를 만들고, 거울로 된 공간을 창조한다. 코브는 애리어든에게 경고한다. 지나치게 세상을 바꿔나가다 보면, 그 꿈 속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애리어든에게 집중할 것이라고.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이 그런 느낌이다. 작가 자신은 결코 그 소설 안에 등장하지 않지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무라타 사야카가 그려놓은 어떤 비틀림에 집중하고 있다. 대화의 내용도 모두 그와 같은 것이다. 

2. 정상 세계 혹은 소멸 세계에 관하여 
이 책에선 핵심적인 몇 가지 가정이 그려져 있다. 

1) 만일 연인들이 더 이상 성교하지 않게 된다면? 
2) 만일 연인들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다면? 
3) 만일 아이를 낳기 위해선 인공수정만 하는 것이 보편화된다면? 
4) 만일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과 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나 영화 캐릭터랑만 하는 것이 된다면? 

황당하기 그지 없는 가정이지만, 이런 가정이 현대사회와 완전히 벗어나 있는 건 아니다. 저자가 있는 일본도 그렇거니와 한국 역시도 사람들이 애를 낳지도 않거니와, 결혼조차 하지 않는 것이 점점 일반화 되고 있다. 급격한 출산 저하와 함께, 한 해 결혼하는 커플의 숫자도 무서울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한창 결혼해야하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 역대 최저치의 결혼 커플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 9시 뉴스에서 떠들만한 주제이다. 이런 심각한 사태를 일본은 한국보다 더 오래 전부터 경험했고, 이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종류의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도 상당수 등장했었다. 

더불어 연애하지 않고 만화나 애니, 혹은 드라마에만 빠져서 '역시 3d보단 2d가 최고지!'라고 외쳐대는 사람들도 극소수지만, 일본에선 일종의 현상처럼 확대되고 있다. 

하나의 세계는 어떤 보편화된 공통 가치를 갖고 보편감을 느낀다. 그런데 세상을 조직하고 있는 기본적인 법칙이나 공감하는 경험이 달라진다면, 이건 일종의 세계가 바뀌는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저자는 현재의 보편감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혹시 이런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건 아닐까'라는 주제로 가정에 가정을 꼬리 물어서 이어나가본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꽤 진지한 형태로 쓰여진 판타지 혹은 SF소설인데, 사실 그 어떤 내용도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흘러가는 건 아니다. 다만 주목해서 볼 수 있는 건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어떤 절대적인 시대정신이라던가 세계정신이 있다고 믿는 것에서 벗어나, 시대에 따라 느끼는 감각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이질감이 심하며, 그래서 또 매력적인 책이다. 

3. '소멸세계' 3줄 평 
- 정상적인 가족이란 무엇일까, 정상적인 성생활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비트는 소설. 
-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곤 있지만, 이 책은 일종의 과학 사고 실험 같다. 실험의 주제는 비범하다. 
-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미래 사회의 모습 중, 적어도 1가지 이상은 맞는 게 나오지 않을까.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9. 13. 23:03
성냥갑 아파트의 아름다움 
알랭 드 브통이 쓴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이런 말이 인용되었다. 

시인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과거의 유명한 화가나 시인의 작품에 나오는 전원적인 풍경, 또는 때 묻지 않은 목가적 장면에만 한정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에머슨 자신은 산업 시대의 새벽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철도, 창고, 운하, 공장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다른 형식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가능성에 여지를 주고 싶었다. 

2014년도 Game of the Year에 선정된 ‘Last of Us’는 도회지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쇠락한 공간의 아름다움 

가끔 한강공원 근처 압구정 아파트를 지나게 될 때가 있다. 들어가본다. 벗겨진 페인트의 자취가 아름답다. 

우디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비슷한 심상 관찰하고 있다. 1920년대 파리의 밤거리를 그리워 하는 ‘길(오웬 윌슨)’.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 거리가 아닌 과거를 그리워 한다. 

건축 관련 도서들을 읽다보면 혹은 뉴스를 읽다보면 한국의 성냥갑 아파트를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근데 그게 절대적인 감각일까? '아름답다'라는 감각이라던가 혹은 '어울린다'라는 생각은 사실 절대적인 것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제시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은 아닐까. 지금의 성냥갑 아파트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싹 갈아엎고 새로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보는 논리는, 사실 되짚어 보면 거의 모든 종류의 건축물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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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