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9. 18. 23:40
좋아하는 음악의 기준 
어떤 사람들은 가사에 목매달며,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가사'야. 가사가 가장 중요하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가사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요소 중 하나라, 음악 감상에 있어 가장 뒤로 미뤄둔 그런 뒷방석 같은 요소이다. 내가 어릴 적엔 우리 집에 전축 비스무리한 어떤 물건이 있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게 제대로 틀어지고 있는 걸 본 기억은 없다. 아빠는 매일 회사에 밤늦게까지 일하며 성공을 꿈꿨고, 울 엄마는 일반 가요라던가 클래식 심지어 트로트마저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가끔 엄마가 노래 테이프를 갖고 와서 틀곤 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찬송가였고 그도 아니면 조수미의 '아베 마리아' 같은 노래였다. 만일 한 인간의 노래 듣는 습관이 그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나라는 인간에 있어 나의 어린 시절 음악 환경은 그 누구보다도 불행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는데, 꽤나 자유롭게 노래부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혼자 노래 가사도 쓰고, 나만의 멜로디도 지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우리 집은 논밭이 잔뜩 펼쳐져 있는 시골 속 아파트 촌이었기 때문에 혼자 걸어다닐 길도 충분했다. 난 귀가길에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즉석에서 내가 하루 느꼈던 하루의 감상이라던가, 나의 감정을 담아, 혼자 나만의 노래를 창작해서 무작위로 불렀다. 어느 날 엄마가 그 노래를 들었는데, 내가 부르는 노래가 마치 기성곡 같다고 칭찬했다. 그게 칭찬인지 혹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시절엔 내내 공부만 했다. 정말 공부만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집에 돌아오는 저녁 10시엔 컴퓨터를 하거나 판타지 소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보통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잤고, 그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면 자율 학습시간을 주곤 했는데, 난 그 때 갖고 있던 MP3기기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그 때 듣는 노래 대부분은 OST곡이었다. 가사가 없는 류였다. 가사없는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 때문이었는데, 첫 번째 이유는 가사랄 게 사실 별 거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차피 가사 따위, 내가 지어도 그거보단 낫겠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이유는 공부하는데 노래 가사따위 방해됐기 때문이다. 아마 두 번째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노래 가사가 명확히 들리다 보면, 공부하고 있는 텍스트에 집중이 되지 않고 노래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가사 없는 노래를 듣곤 했는데, 사실 가사 없는 노래는 별로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 대안책으로 찾은게 일본 노래와 팝송이었다. 두 가지 노래는 내가 꽤 많은 곡을 찾아서 들었는데, 내가 결코 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노래를 많이 들어도 그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학생 즈음이 되어서 내 영어 실력과 일본어 실력이 꽤 늘었다. 영어와 일본어 노래를 들으면 어느 정도 노래가 이해가 되니, 싫었다. 

그러고나서 한참을 제대로 된 노래는 듣지도 않고 살았었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 내가 평소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더라. 혼자 길을 걷고 있어도 감히 노래를 부를 용기조차 나지 않더라. 그게 조금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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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