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9. 21. 23:21
불안 
나는 왜 불안을 느낄까. 돈이 부족해서일까? 만일 그렇다면 직장인이 된 지금, 학생 때보다도 불안감이 줄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감은 갈 수록 늘어나고 있다.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인가? 그것도 아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직업적 우열관계를 느낄 경우도 있긴 한데, 그것이 나의 불안감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드물다. 그런 건 가끔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자아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합리화된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불안감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회사 업무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한다거나, 혹은 맡은 일을 처리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가? 솔직히 그런 건 내게 어떤 불안감을 주지 못했다. 그건 그저 내가 하나하나 처리해야 할 업무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내게 불안감을 제시하진 않는다. 아예 본능적으로 식욕이라던가 성욕이 충족되지 못한 탓에 불안을 느끼는 건 아닐까? 그 또한 아니다. 욕구는 내 영혼에게 '필요하다'라는 말을 던질 뿐, 피부가 바싹 움츠러드는 불안감을 제시하진 못한다. 

내가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 인간관계 때문은 아닐까?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낀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능력 혹은 배경 같은 것을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거나, 혹은 내가 인간관계에서 폭넓은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한다거나, 혹은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거나, 혹은 회사에서 중요한 의사소통에 끼어있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하는 수많은 경우에 난 실제로 불안감을 느낀다. 인간관계에서의 문제가 명명백백한 사실이든, 혹은 내가 은근한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이든 간에 그건 분명히 불안감을 준다. 

그럼 난 어떤 식으로 이런 불안감을 해결하고자 하고 있을까? 

첫째, 새로운 인간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지 않거나, 혹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거나, 혹은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지는 않는 것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둘째, 자기 합리화 혹은 회피다. 이런 방식은 인간관계에서의 불안감이 명명백백해지지 않고, 직감적으로만 느껴질 때 쓰는 방식이다. 셋째,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당장 관심있는 일에 집중하거나,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에만 집중한다거나, 혹은 내가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우선순위가 불안감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런 방식들은 불안감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내게 불안감을 주는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흐트러진 인간관계를 바로잡고, 좋은 인간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일이 쉬운 일이었다면 애초에 불안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회피'에 가까운 방식으로 불안감을 쫓아내고자 하는 이유는 아마 이를 통해 더 중요한 걸 지키고자 하는 내면의 프로세스 때문이다. 자존감이다. 불안감은 조금씩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자존감이 흐트러지면 불안감을 없애고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힘마저 사라지게 된다. 당장의 문제를 회복하고자 진척 없는 길에서 허우적대기보단 당장의 자존감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낸 뒤에 새로운 강구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존감과 불안감이란 건 정말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걸까? 


Posted by 스케치*

저자 :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 / 옮긴이 : 김태훈 
출판사 : (주)위즈덤하우스
초판 1쇄 발행 : 2017년 5월 25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7월 21일 

1. 2가지 대립되는 이미지
이 책에서 대립되는 2 가지 이미지가 있다. 실리콘 밸리 식 문화와 센스메이킹이다. 실리콘 밸리의 문화는 빅데이터, AI, 기술 중심으로 대표되는 이미지이고, 센스메이킹의 문화는 문학, 역사, 맥락, 인간에 대한 이해로 대표되는 이미지다.

실리콘 밸리의 문화에 대해선 책 속에 아래와 같은 문구로 대표적으로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 유행하는 개념 중 하나는 '마찰없는frictionless'기술이다. 이 기술은 현재 혁신의 기준이 되었다. 마찰 없는 기술이란 생각이나 감정의 형태로 인간적 요소를 입력할 필요 없이 원활하고 직관적으로 작동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때 기술은 현실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중략)
2010년에 당시 구글 대표인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대다수 사람은 구글이 질문에 대답해주기를 원치 않아요...... 그들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구글이 말해주기를 바랍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인터넷 문화와 서구 문화 그리고 폭넓게는 공적인 삶에 생긴 미묘하고도 주의가 필요한 변화를 반영한다. 

AI 스피커라던가,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정확히 이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들이다. 수많은 회사들은 유행처럼 이 트렌드를 따라간다. 기술을 도입하려 하고, 이 기술을 적용해서 고객에게 유용한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만드는 것이 고객들이 진실로 원했던 것인가? 

아래 문구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센스메이킹을 도입하여 슈퍼마켓이라는 공간을 조사한 사례이다.

센스메이킹을 통해 파악한 한 가지 기분은 '저녁의 다급함'이다. 단지 소수의 고객집단만 퇴근 후에 정신없이 물건을 사지 않는다. 모든 조사 대상자가 이런 기분에 따라 물건을 구매했다. 특정한 매장은 이런 기분을 잘 맞춰주는 경험을 제공한다. 저녁 5시가 되면 아이들이 배가 고파진다. 그래서 빨리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거리 몇 가지를 사야 한다. 저녁의 다급함을 느끼는 구매객들은 쉽게 돌아다닐 수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예측할 수 있으며 몸에 좋은 저녁거리를 바로 찾을 수 있는 매장을 원한다. 
(중략) 
센스메이킹은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연구를 활용해 슈퍼마켓은 요리라는 문화적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무대장치나 무대미술scenography임이 드러났다. 슈퍼마켓은 음식을 연료처럼 대하는 최적화의 체계 대신 이 극장에 맞도록 다른 분위기를 전달해야 했다. 가령 아침에 풍기는 신선한 빵과 커피의 향기는 구매객들을 유혹하고, 음악은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며, 조명은 밝고 활기차야 한다. 저녁에는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 사람들은 향긋한 냄새와 따듯하고 희미한 조명을 원한다. 계산을 빨리할 수 있게 직원도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 모든 것이 유혹적이고 아늑해 보이도록 청소도 해야 한다. 아침식사용 제품은 치우고 식탁을 장식할 신선한 꽃들로 대체해야 한다. 

첨단 IT기기와 슈퍼마켓이라는 공간이 정확히 일대일로 구분되지는 않겠지만, 하나의 회사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무엇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하는지에는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 이런 종류의 책들이 계속 눈에 띤다. '아날로그의 반격' 같은 책도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주류에 맞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런 반격이 과연 오랫동안 우리를 유지하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잠시 고개를 들었다 스러지고 말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센스메이킹이 견지하는 바는 일견 인간 vs 기계에 대한 논리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인간으로서 그 양자점에 서있게 되므로 팔이 굽어 인간의 편을 들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런지는 알 수 없다. 

2. '센스메이킹' 3줄 평 
- 최근 불고 있는 빅데이터의 한계를 여러 관점, 지식을 통합하여 보여주는 책. 
- 책 안에 통계나 수치, 법칙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럼에도 '과학적'으로 읽힌다. 
- 인문학으로 대표되는 인간은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는 식으로도 읽히는데, 언제까지 그 주장이 이어질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미분류2017. 9. 19. 23:51

저자 : 마티아스 뇔케 / 옮긴이 : 이미옥 
출판사 : (주)위즈덤하우스
초판 1쇄 발행 : 2017년 8월 8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8월 23일 

1. 조용히 드러낼 것 
'빈 수레가 요란하다' 

옛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거다. 고등학교 때 친구 중에도 그런 녀석이 있긴 했다. 자긴 어떻게 해서든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통칭하는 약어)에 가겠다고.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하면 못할 게 어딨냐고. 혹은 자기 목표는 매 달 10점 씩 모의고사 점수를 올리는 건데, 친구들에게 그 목표를 떠들어대며 그걸 꼭 이루겠다고 하는 녀석이 있었다. 아마 그 친구도 옛날에 한창 유행했던 자기계발서 중 하나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목표를 남들에게 떠들어대면, 자신감도 생기면서 또 한 편으로는 쪽팔려서라도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거라는 류의 책들이 꽤 있었다. 

그 친구가 그렇게 떠들어댔던 것이 고1 때였던 지라, 문`이과가 나눠진 이후론 서로의 소식 듣기도 요원해졌다. 고3이 지나서 어딘가 대학에 갔을 텐데, 그 친구는 과연 어딜 갔을까. SKY 대학에 간 친구들은 학교 플랜카드에 걸리니, 아마 그 대학들 중 한 곳은 아닌 것 같다. 

군 시절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일병 말 쯤이었는데, 당시 난 꽤 심각한 유행성 독감에 걸려서 병실에 격리되어 있었다. 훈련도 특별히 받지도 않고, 5평 남짓한 병실에 일주일 내내 갇혀 지내는 건 정신적으로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병실에 있던 유일한 책이 '시크릿'이라는 책이었다. 자기계발서 류의 책을 평소 싫어하던 나도,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내리 3번을 읽었다. 

쉽게 읽히는 책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극적이고 욕망을 충족시키는 책이라 꽤나 빠져들어서 읽었다. 병실에서 나온 이후에도 3번이나 읽었던 그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던 지라 그 안에 나와있는 내용을 실천해볼까 이것저것 시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남들에게 이것저것 목표를 잔뜩 말해놓고, 결국 흐지부지 된 사례가 많아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조용히 이기는 사람들'이란 책은 바로 그런 류의 자기계발서와 대척점에 서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조목 조목 그런 사례들을 비판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엔 괜찮긴 한데, 책이 중간 쯤 가면 힘이 빠진다. '절제'란 키워드로 저자가 이것저것 조사를 많이 했다는 생각은 드는데, 다소 과하게 엮었다는 생각이 드는 항목도 눈에 띤다. 그런 부분들은 그냥 가볍게 넘겨 읽었다. 

2. '조용히 이기는 사람들' 3줄 평 
- 저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성은 '절제, 에너지 비축, 관계'에 중심을 두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 2000년대 중반 유행했던 '자기 긍정, 자기 PR, 성공 확신'이란 주제를 과감히 비판한다는 점에서 주제 의식은 꽤 매력적이다. 
- 절제와 관련해서 많은 내용들을 다루긴 하는데, 조금 과하다.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