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12. 24. 23:18
상강
생강더미에서 생강을 고른다
생강을 고르는 건 
생강을 생각하는 일

크고 작은 생각이 
크고 작은 생강의 후보군이 되어
제 몸에서 조금씩들 흙을 흘린다
바스러져 흩어지는 생강의 흙
이 순간의 생각이란 왜 이렇게 빤할까

더러 너의 거기를 쏙 빼닮은 생강
내 사랑하던 두더지가 입을 삐쭉하며
알은척을 해오기도 했다 의외로 
작으면 작은 대로 감칠맛이 있어
원숭이들 등 긁듯 살살 훑다보면
곰과 맞짱을 떠야 하는 밤도 생겨났다

누가 커지라고 했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어
곰에게 한두 번은 잡혀줬으나
그 이상은 시시해서
부지기수로 잡아먹어버린 곰
그 곰에 어쩌다 탕이 불었을까
곰탕을 가지고 너무 끌탕을 했나
그 곰에 어쩌다 탕이 붙어 
성교의 은어가 되었는가 모르겠다만
한때 나는 구강성교라면 딱 질색이던
정숙하고 조숙한 너만의 칼집

복음자리 생강차 470그램짜리 한 병 선물 받고
생강차 한 잔 뜨겁게 타 마시다가
생강을 사러 나와 생강을 고르는 일
생각도 생강을 기다려야 올까
생강의 흙을 털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생강에 흙이 더 묻기까지 기다려야 할까

못생긴 건 둘째 치고서라도 헐벗었기에 너는
생강
모든 열매 중에
가장 착하게 똑 부러져버릴 줄 아는 
생각 
- 김민정,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中 - 

이건 뭐, 힙합이 따로 없네. 

제목 오타 아닙니다. 제목이 상강이네요. (왜지?) 

여튼,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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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2. 23. 23:16
성공하지 못할 일에 대해서 
성공의 가망이 없는 일에서도 연습을 계속하라. 다른 면에서는 연습 부족으로 민첩하지 못한 왼손도 고삐를 잡는 일에서는 연습이 되었기 때문에 오른손보다도 더 확고히 쥔다.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주)문예출판사, 1983

성공하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한다. 마치 친구에게 밥을 살 때 그 친구가 다시 내게 밥을 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혹은 회사 동료 중에 누군가 결혼을 할 때 그의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내긴 하지만, 결국 그가 내게 돈을 다시 돌려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축의금을 내는 것과도 비슷한 기분이다. 혹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그 게임이 내 삶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열심히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거래라고 하는 건 언제나 5:5로 흘러갈 것 같지만, 거래는 항상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아니, 내가 그렇게 미묘하게 조정을 한다. 친구들과 함께 피자를 먹다가 마지막 한 조각이 남으면 그걸 누가 먹는가 하는 문제로 1초라도 고민을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에도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내가 손해보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쿨한 척을 하며 나는 남들에게 더 잘한다, 라는 인상을 심어주고자 조금 손해보는 방향을 선택한다. 만일 친구들이 그걸 쿨하다고 인정해준다면, 그건 내게 손해가 아니다. 그것마저도 내게는 유리한 방향이 아닐까? 인간관계에서 마치 손해보는 척하며 항상 이득을 챙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타적인 행동이 결국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 되곤 한다. 

내 삶에 대해서도 언제나 손해보지 않으려 한다. 내가 가진 노력에 대해서도 언제나 5:5로 흘러가길 바란다. 아니, 사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길 바란다.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근데 어디 삶이 나를 그렇게 놔두는가. 인간관계보다도 더 다이나믹하게 내게 거래를 시도한다. 그러면 나는 쿨한 척 하며 실제 내 기대보다도 더 노력한다는 인상을 내 자신에게 심어주고자 노력한다. '뭐, 어차피 잘 안돼도 괜찮아. 그냥 즐기는 거야.' 근데 웃기는 건 그렇게 손해보는 척하며 항상 조금이라도 이득을 챙기고자 한다. 인생은 모두 점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외치며, 내가 한심하게 시간을 보냈던 일이라던가, 혹은 시간 낭비했던 많은 것들이 실은 내 인생에서 쿨하면서도 쩌는 일이었다고 외친다. 

성공하지 못할 일에 대해서 노력하지 못하는 건, 그런 쿨한 태도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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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12. 22. 23:54
그 많은 금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배웠던 금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은 이런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금은 유럽에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막대한 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러한 금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쌓아온 막대한 부였다. 물론 이런 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나치는 유럽 전체에 이르는 커다란 전쟁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금은 미국과 캐나다 혹은 스위스나 스웨덴과 같은 중립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가장 많은 금을 갖게 된 것은 미국이었다. 이렇게 미국에 들어간 금은 이동할 기색없이 미국의 부를 상징하게 되었다. 금본위제가 실시되었고, 미국 달러는 금과 같은 기준으로 가치를 갖게 되었다. 물론 어느 순간 금본위제는 박살이 났고, 달러는 실물 없는 가치만을 갖는 종이 쪼가리가 되었지만. 

그나저나 금은 어디로 갔을까? 금은 보관소에 있을까? 선물시장이 열리고, 비밀스러운 금 시장이 열리면, 그곳에서 거래상들은 금을 거리해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은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용어로 거래를 진행한다. 그렇게 오고가는 것은 금이 아니라 전자금이다. 시간 개념도 애매해서, 당장 그것을 산다고 해서 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금을 갖는 권리를 사거나 혹은 금을 살 권리를 산다. 아주 이상하다. 

보관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다. 금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돌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아주 일부의 금 덩어리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다 시장에 팔아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인식만 남겨주면, 금을 팔아넘기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비슷한 일이 은행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지급준비율이 괜히 나온 정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은행에 맡긴 대부분의 돈은 은행에 없다. 사람들은 은행 창고 안에 돈이 잔뜩 들어있을 것을 상상하지만, 생각보다 그 돈은 많지 않다. 국가에서 정한 지급준비율에 해당하는 돈을 제외하곤 돈은 전부 시장에서 떠돌고 있다. 이 때문에 돈은 실제 국가에서 찍어낸 돈보다 더 많이 시장에서 흐르고 있다. 돈이 돈을 만들고, 다시 돈을 만든다. 그나마 지급준비율이 있으니 마이너스인 상황에서도 돈이 흐르는 병맛같은 상황이 펼쳐지지 않는 것이겠지. 

금 보관과 관련해서도 규제가 있긴 할까? 원래 지급준비율이라는 개념이 금보관과 관련해서 생긴 정책이라고 하던데, 지금도 그런 걸 하고 있을까? 그런 걸 하고 있다면 왜 대부분의 거대한 금 보관소들은 금을 공개하지 않는걸까? 포트녹스에 금은 있긴 한걸까? 

만일 금이 보관소에서 사라져버렸다면 그 금은 어디로 다 흘러가 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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