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26. 23:52
나의 시작은 언제일까 
어렸을 땐 그게 참 무서웠다. 내가 처음으로 시작된 순간이 언제였는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살아있다는 느낌은 신기하다. 기억은 신기하다. 기억이 있기 전엔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다. 종교는 전생을 이야기하고, 과학은 빅뱅이라던가 우주의 기원 혹은 생명의 기원을 이야기하지만, 나의 기억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가 갑자기 기억을 갖게 되었다. 시간은 그 때부터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고, 공간은 그 때부터 내게 의미가 있었다. 그 전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역사를 배우면서 나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사실 그건 내게 의미가 없었다. 나의 기억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어린 마음에 그래서 더 종교에 빠졌었다. 종교가 내게 어떤 중요한 답을 줄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종교는 내가 시작한 순간보다는 내가 끝나는 순간에만 관심을 가졌다. 다들 거기에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나처럼 시작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는 건가.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니 그런 것에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걸까? 

시간은 이미 고정되어 있고, 나는 마치 컴퓨터 속에서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것처럼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설명은 그나마 평안을 주었다. 그럼 뭐, 시작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설명은 그저 가설일 뿐인지라, 다시금 마음이 불안해진다. 난 언제 시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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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