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21. 23:56
도둑질의 욕구 
거미가 파리를 잡았을 때 대견해 하듯이 어떤 사람은 토끼를 덫으로 잡았을 때 대견스러워한다. 어떤 사람은 청어를 잡았을 때, 또 어떤 사람은 멧돼지나 곰을 잡거나 사마티아 사람을 잡았을 때 대견해 한다. 사실 원칙이란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볼 때 이들은 모두 강도 이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주)문예출판사, 1983

요즘엔 도둑질 잘 하는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것 같다. 

사실 도둑질이라는 이미지는 아주 어릴 때 형성 되는데, 도둑질이라고 우리가 교육받는 건 보통 집 안에 창문을 깨고 들어가 훔치는 도둑의 이미지가 가장 강렬하다. 그게 아니라면 길거리에서 주머니를 터는 주머니 털이범 정도이다. 

나이가 들면 생각보다 사회에 도둑질이 만연하다는 걸 알게 되는데, 나도 그런 도둑질을 처음 경험한 것이 보이스피싱이었다. 검찰청을 사칭해서 내게서 돈을 뜯어가려는 집단이었는데, 30분 간 전화를 붙잡고 긴장하고 있다가 말투가 의심스러워 전화를 끊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제서야 내가 도둑질 당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종류의 비스무리한 보이스피싱은 나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의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류의 도둑질은 너무나 그 의도가 뻔하고 명확해서, 도둑질을 당하거나 혹은 시도되었을 때 그들을 욕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도둑질은 도저히 도둑질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종류의 도둑질도 있다. 투자라고 이름짓고 투기라고 부르는 종류의 도둑질이다. 앞선 사람에게 내 돈을 헌납하지만, 결국 나도 누군가의 돈을 도둑질하여 손을 털고 나간다. 투자라는 것도 사실 어떤 명백한 목적성이라는 것이서 투자한 대상에 대한 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더 비싼 값에 넘기는 것만 생각하거나 혹은 투자 대상 자체가 아무런 투자 가치가 없는 경우에는 이건 도둑질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돈을 벌게 될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거나 존경의 대상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게 되는데 사실 원칙적으로 보았을 때 이게 강도짓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근데 또 우스운 일이다.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 혹은 철학에 따라서 도둑질의 유무가 결정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이러한 도둑질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조차 고리타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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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