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17. 23:40
콘트라스트의 미묘함
우아함은 콘트라스트의 미묘함에서 시작된다. 
- 마리 로랑생 -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마리 로랑생 전에 다녀왔다. 


프리다 칼로 전을 보러 온 이후로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은 한가람 미술관이었는데, 그 때도 지금도 여성 화가를 다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점이 꽤 인상깊었다. 이전에 미술관에 가면 열에 아홉이 남성 화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유명한 화가들 대다수가 남자이기도 했고. 그래서 어린 마음에 '화가라는 건 원래 남자들이 하는 건가? 그런데 그림은 여자애들이 더 잘그리는 데 무슨 이유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시대도 변했고, 우리가 보편적 지식이라고 생각했던 개념도 변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였음에도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어떤 고정관념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화가들이 속속들이 들어와서 알려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보면서 계속 했던 생각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 진작 알려지지 않았을까.'였다. 어딘지 모르게 내가 생각했던 프랑스 파리의 이미지와 가장 밀접한 형태의 그림 같기도 하고, 퇴폐적이면서도 우아하고 미묘한 매력이 있는 그림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화풍이었기 때문에, 어릴 적에 처음 고흐의 그림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미술엔 지식도 얕고 조예도 깊지 않아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두고 감히 평가할 입장은 못되지만, 그의 작품을 두고 있는 어떤 명확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흐릿한 경계선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명암비라던가 사물과 사물을 가르고 있는 경계선이 매우 흐릿하고 미묘한데, 이런 식으로 그려진 그림이 흔치 않은 편이라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한 인물들의 선이 매우 가늘고 기다랗게 왜곡되어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요즘 많이 그려지는 동인지 만화라던가 순정 만화 같은 느낌도 일견 전달하고 있다. 

내게는 콘트라스트의 미묘함이라고 부르는 그 말이 참 와닿는다고 할까, 나라는 사람이 우아하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람이라는 존재도 뭐든지 너무 명확한 사람보다는 어딘지 숨겨진 맛이 있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않는가. 가끔은 그런 사람이 머리 아프기도 하고 짜증도 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런 모습을 두고 세련됐다거나 우아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서 세련이라던가, 우아함이라는 말이 좋다/나쁘다의 의미로서 해석될 수야 없겠지만. 

그런 내 일상에서의 생각과 이미지가 그림의 표현에서조차 느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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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