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14. 23:43
오픈소스에 대한 생각 
괜히 오픈소스라는 키워드를 블로그에 쓰면, 기술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엉뚱하게 이 블로그로 올까 무서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키워드만큼 정확한 것이 없어서 일단 이걸 제목으로 삼아 본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 가장 충격적인 개념이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개념이라 생각했던 것이 바로 '오픈소스'에 대한 철학이었다. 자신이 개발한 소스코드를 비롯해서, 자신의 플랫폼, 자신의 정보 처리 알고리즘들을 사회 전체에 무료로 배포하는 방식을 보통 오픈소스라고 하는 것 같다. 기존 산업 사회에서의 방식에선 자신이 모은 지식은 숨겨두고, 자신이 개발한 어떤 것에는 로열티를 부가하며, 사회에 공개하지 않고 꽁꽁 숨겨두는 것이 기본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오픈소스 개념에선 이런 빗장을 완전히 푼다. 지식은 공유해서 오히려 더 많이 참여하게 하고, 로열티 프리가 일반적이며,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에 방점을 둔다. 

사실 이런 개념은 오픈 인터넷 시절부터 정립된 오래된 방식이고, IT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에도 한국에 널리 배포된 방식이기도 하다. 만일 내가 대학에서 전자공학과 관련된 조금의 정보라도 알고 있었다면 오픈소스의 개념에 대해서 이미 완전히 알고 있었겠지. 어설프게도 문학이라던가 사회학, 외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을 다니다보니 이런 분야에선 상당히 뒤쳐지게 되었고, 회사에 입사한 뒤에서야 그런 키워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회사에서 오픈소스라는 키워드를 들었다고 해서, 회사에서 오픈소스를 통용적으로 적용하고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미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에는 오픈소스를 잔뜩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우리 회사의 제품 중에 오픈소스 정신을 제대로 추구하고 있는 제품/서비스는 아무 것도 없다. 애초에 이런 종류의 서비스를 시도해보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오픈소스 정신으로 무장한 회사였다면 경영설명회를 할 때마다 돈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해서 사회에 오픈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했겠지. 

CEO의 문제일까? CEO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건 너무 단순한 방식이다. 그의 주변 중에 아무도 오픈소스 기반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서 제안하는 사람이 없다. 이미 기존에 있는 시스템을 잘 굴러가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거의 모든 회사원이 그 일에 매달리고 있다. 아이디어를 좀 내보라는 얘기를 해도, 그냥 시키는 것만 착착 따라하거나, 출판된 지 2~3년이 지나버린 5년 전의 아이디어를 다룬 책에 대한 감상문을 써나갈 뿐이다. 오픈소스라거나 새로운 서비스라거나 혹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힘드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많이 보고 들어야 한다. 괜히 어디선가 뭐 좀 주워듣고 나니, 내가 바보였다는 걸 깨닫고 이런 글을 쓴다. 


'잡문 > 기타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트라스트의 미묘함  (0) 2017.12.17
신을 버리고 나를 채울 것  (0) 2017.12.15
경험한 것의 연결  (0) 2017.12.13
예측하기  (0) 2017.12.12
균형으로서의 일상  (0) 2017.12.11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