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12. 23:27
예측하기
같은 예측이더라도 크고 대담한 예측을 하는 고슴도치에게 텔레비전 출연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간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자문위원이었고 지금은 폭스뉴스의 해설가로 있는 딕 모리스는 고슴도치의 고전적 사례다. 기회가 주어질 때 극적인 예측을 하는 게 그가 구사하는 전략인 듯싶다. 2005년에 그는 조지 W.부시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잘 대응해 대중의 인기를 회복할 거라고 공언했다. 2008년 대통령 선거 전날 밤에는 오바마가 테네시와 아칸소에서 이길 거라고도 예측했다. 2010년에는 공화당이 하원 선거에서 어렵지 않게 100석을 차지하고, 2011년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이며 승리할 가능성이 "더럽게 높다"라고 예측했다. 
이 모든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중략)
여우는 때로 방송, 사업, 정치처럼 즉각적이고 단호한 순발력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 여우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예측하기 어려우며 또한 이런 불확실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감과 확신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중략)
하지만 여우는 훨씬 나은 예측을 한다. 자료가 소음에 얼마나 물들어 있는지 빠르게 간파하며 가짜 신호를 좇는 일도 적다. 여우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슴도치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 
1. 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주)도서출판 길벗, 2014

과연 내가 하는 일이 마케터의 역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에선 끊임없이 예측을 요구한다. 나는 하루 중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예측하는 작업을 한다.(사실 예측을 위한 근거자료를 찾는다. 아니, 그보다는 보고를 위한 기초 자료를 찾는 게 우선이다.) 

처음엔 이렇게 예측 자료를 맨바닥에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구글링을 해봤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라고 외치는 상사도 있었다. 그러한 탓에 그는 특별한 대안도 없이 구글링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그런 결론이 꽤 타당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구글링하는 걸 포기할 순 없었다. 정보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 공급하는 사람도 있긴 해야 한다. 

나중에 가보니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은 많았다.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채권 및 각종 자산 시장에서 투자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 이와 비슷한 일이었다. 회사에선 주식 리포트를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막아두었지만, 나는 막혀 있지 않은 다른 사이트를 우회해서 찾는 방식으로 주식 리포트를 읽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검색하고 싶어하는 고객사나 파트너사의 정보들은 주식 리포트에서 우선 정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언뜻 보기에는 내가 급하게 뉴스 검색이나 한 수준보다도 더 깔끔하게 정돈된 내용도 다수 있었다. 

어차피 시장의 정보라고 하는 건 오프라인에만 머물지 못한다. 모든 오프라인 정보는 온라인으로 흘러들어오게 되어 있다. 오프라인은 언제나 온라인보다 빠르고 정확하지만, 결국엔 온라인에 와서 정리가 된다. 그리고 돈을 굴리는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예측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수요를 창출한다. 

이런 점을 알게 되니 어떤 회사의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더 수월해졌다. 내가 주식 시장을 공부하고 재테크를 공부하는 것은 회사에서 내 업무를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한정적인 세계였는지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소음이 섞이게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새로운 정보가 있다.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이 여러 정보들과 비교하면서 대부분 가짜 신호에 불과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회사에서 작성했던 나의 대담한 보고들이 얼마나 멍청한 것이었는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절감한다. 

뭐, 절감했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다. 그냥 멍청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도 한다. 항상 예측하고, 항상 틀린다. 


'잡문 > 기타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픈소스에 대한 생각  (0) 2017.12.14
경험한 것의 연결  (0) 2017.12.13
균형으로서의 일상  (0) 2017.12.11
멍때리고 싶을 때  (2) 2017.12.10
비트코인  (0) 2017.12.07
Posted by 스케치*